가정이 가사의 재산목록을 만드는 동안 관원이 입회하여 가정이 물품들을
빼돌리나 감시를 하였다.

불상 서화 항아리 병풍 각종 짐승가죽, 금은으로 만든 집기들, 여러
옷감과 의복종류, 장신구들, 수만냥의 금은 동전들이 목록에 올랐다.

그리고 집문서, 땅문서, 하인문서까지 봉인을 하여 목록에 적어놓았다.

가사의 재산목록을 받아든 군왕들은 계속 감시를 하도록 관원들을 몇명
남겨두고는 가정을 비롯한 가씨 가문 남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영국부
대문을 나섰다.

북정군왕은 가정을 묵묵히 바라보고 나서 술레에 올랐다.

북정군왕은 가씨가문을 염려하는 기색으로 가득하였다.

가정이 안으로 다시 들어오니 맏손자 가란이 달려와 아뢰었다.

"할아버님,증조 할머님을 위로해드려야겠어요"

대부인을 생각하는 가란이 기특하여 가정이 가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대부인의 거처로 가보았다.

왕부인과 형부인, 희봉들이 대부인을 중심으로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끽
있었다.

그러다가 가정이 들어가자 대부인과 형부인이 그만 큰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어머님, 너무 상심 마십시오. 형님께서 관청으로 끌려가긴 했지만
심문을 받고 사실이 밝혀진뒤에는 곧 황제폐하의 사면을 받아 풀려나게될
것입니다"

"재산이 다 몰수된다며?"

대부인의 두눈은 이미 충혈될대로 충혈되어 있었다.

"영국부 재산이 다 몰수되는 것은 아니고요, 형님 개인 재산만 차압을
당할 모양인데 그것도 일단 집행이 보류되어 있으니 황제폐하의 사면만
있으면 철회될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이 일로 옥체를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가정이 간곡한 어조로 대부인을 위로하고 나서 물러 나왔다.

대부인은 가정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가씨가문 전체가 몰락할것
같은 불길한 예감만이 엄습하여 결국 몸져 눕고 말았다.

며칠후 겨우 기운을 차린 대부인은 원앙에게 지시를 하여 방앞
뜨락에다가 여러개의 향을 묶어 만든 두향을 피우게 한다음 지팡이를 짚고
뜰로 내려가 향불이 불상이라도 되는 양 그쪽을 향해 여러번 절을 하고
염불을 외며 소원을 빌었다.

"황천보살님이시여, 빌고 비나이다. 제한 목숨 죽어 자손들의 죄가
용서될수 있다면 저를 속히 황천으로 데려가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를 올리다가 통곡하며 대부인은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