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칠성관을 쓰고 팔괘가 그려진 법의를 걸치고 상아홀을 든
세 명의 법사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귀신들을 내어쫓는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보검과 법수를 받쳐들고 있고,다른 한 사람은 검은 칠성기를
들고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타요편 (귀신을 때리는 채찍)을 들고 있었다.

그 법사들은 대관원 구석구석을 돌며 법수를 뿌리고 보검으로 가위표를
그리며 칠성기를 내둘렀다.

오방을 누르고 섰던 작은 도시들이 오방기들을 들고 우르르 무여들자,
타요편을 들고 있던 법사가 그 채찍으로 공중을 향해 세 번 후려쳤다.

법사들이 공중으로 손을 뻗어 귀신들을 잡아 두루미처럼 목이 길쭉한
병에 집어넣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고는 붉은 글씨로 쓰여진 부적으로 병의 아가리를 봉하였다.

법사들이 그 병을 가사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

"이 병 속에 귀신들을 잡아 넣었으니 이 병을 철함사 탑 밑에 묻어두면
다시는 귀신들이 대관원에 출몰하지 않을 것이오"

그렇게 귀신 소동이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무렵, 지방으로 부임했던
보옥의 아버지 가정이 장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영국부 가씨 가문과 먼 친척뻘이 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여러 가지
범죄와 관련되는 사례가 발생하여 황제가 가정을 장안으로 불러올려
그 진상을 보고하도록 했는데,그런 와중에서 가정이 장안에 눌러앉게 된
것이었다.

하루는 가정이 손님들을 청하여 주연을 베풀고는 그동안 지방에서
겪었던 일들을 무용담 삼아 들려주었다.

한창 주연이 무르익고 있을 때,집사 뇌대가 황급히 들어와 아뢰었다.

"금의부 관장 조대감께서 관원들을 거느리고 들이닥쳤습니다.

무언가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듯 합니다"

가정과 가씨 가문 사람들이 미처 마중을 나가기도 전에 조대감 일행이
객청으로 들어섰다.

곧이어 서평군왕의 일행도 들이닥쳤다.

서평군왕이 오자 조대감이 가정의 손님들을 돌려보내고 나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이 집안의 출입문들을 단단히 지키고 섰거라. 서평군왕께서
황제의 칙지를 선포하실 테니까"

서평군왕이 벌벌 떨고 있는 가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황제의 칙지를
읽어나갔다.

"칙지. 가사는 지방의 관리와 결탁하여 그 세력을 등에 엎고 고리대금을
일삼으며 약한 자를 박해하고 선조의 덕망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 세습직을
박탈하고 그 재산을 차압하노라"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전국적으로 가씨 가문 사람들이 갖가지 범죄와 연관되더니 급기야
영국부의 기둥인 가사 대감까지 걸려들다니.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