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라고 외치는 하인들의 고함소리에 가사가 급히 뒤돌아보았다.

"어디 있느냐?"

"저 숲속 구멍으로 사라졌어요"

하인들이 아직도 떨리는 손으로 숲 쪽을 가리켰다.

"요사스런 귀신도 다 있구나.

노란 얼굴에 빨간 수염이라니.그리고 푸른 옷을 입었다구?"

가사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정말이에요. 우리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니까요"

겁에 질려 있는 하인들을 보고는 가사도 대관원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저기 보세요. 또 나타났어요"

하인들이 일제히 숲 한 모퉁이를 가리켰다.

아닌게 아니라 알록달록한 어떤 물체가 숲 모퉁이를 휘익 돌아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사도 온 몸에 소름이 확 돋으며 머리끝이 서는 것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귀신떼들이 뒤에서 와락 덮칠 것만 같기도 했다.

"자, 오늘은 이만 살펴보고 돌아가자. 그리고 너희들, 오늘 본 것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되느니라. 알았느냐?"

가사는 하인들에게 입단속 할 것을 단단히 당부하고 대관원을 나와
영국부로 돌아갔다.

그러나 하인들의 입이 그냥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동안 가씨 가문에서 억울하게 죽은 여자 귀신들이 대관원으로 모여
들어 한 집씩 한 정자씩 차지하고 살고 있대"

"진가경 귀신, 대옥이, 청문이, 금천아, 지능이, 포이 아내, 귀비 원춘
등등 여러 귀신들이 울음소리들을 내며 돌아다니고 있대"

"어떤 귀신은 하얀 옷을 입고 있고, 어떤 귀신은 검은 옷, 어떤 귀신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대"

이런 소문들이 계속 장안에 퍼져 나가자 가사는 진인부 (도교를 관리하는
관청)에 요청하여 도력 있는 도인들을 불러다가 대관원에 모여 있다는
요마들을 내쫓기로 하였다.

길일을 택하여 대관원에서 축사법사가 크게 벌어졌다.

귀비 원춘이 성친을 와서 머물렀던 정전에 제단이 차려졌다.

각종 성상들과 화상들, 신상들이 모셔지고, 향화와 등촉들이 놓여지고,
오방기를 비롯한 깃발들이 꽂히고, 북들과 법기들이 배열되었다.

도사들이 귀신들을 내쫓을 수 있는 성인들의 강림을 위해 먼저 청성표를
읽었다.

청성표에는 덕망을 쌓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차례로 기록되어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