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휘발유값을 한꺼번에 12.1%나 대폭 인상시킨 것은 명분은 그럴듯
하지만 그 실효성이나 국민부담 측면에서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많다.

사실 이번 휘발유값 상승은 시장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고 정부가 세금을
올린 때문이다.

휘발유에 대한 교통세가 종래의 l당 345원에서 414원으로 20%(69원)나
올랐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교육세 부가세까지 덩달아 오르게 돼 l당 88원이 오르게
된 것이다.

휘발유 소비를 억제하고 도로건설 등 교통관련 사회간접시설 확충을 위해
불가피했다는게 정부측의 설명이다.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유류가 과다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다.

때문에 가격을 올려서라도 소비를 줄여야 하는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과연 이 정도의 값이 올랐다고 소비가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자동차가 일상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인데다 대중 교통수단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휘발유값이 올랐다고 자동차를 굴리지 않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소득 향상에 걸맞는 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이같은 현상을
결코 사치스런 일이라고 볼수 만은 없다.

결국 소비는 별로 줄지 않은채 가격만 올려놓는 결과를 가져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이번 휘발유값 인상으로 인플레 기대심리를 자극시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올들어 휘발유값은 이번 인상분까지 합쳐 34.4%나 올랐다.

휘발유 외에도 내년 1월1일부터는 경유와 등유값이 또 오르게 돼있다.

이것 역시 교통세와 특별소비세 인상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 인상 대기중인 각종 요금들은 많다.

고속도로통행료 의료보험수가, 그리고 기타 공공요금들이 기회만 엿보고
있다.

부동산값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고 보면 내년 물가전망은 어둡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당국은 이번에 인상된 휘발유의 경우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0.09%
포인트 상승효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 심리적 효과는 훨씬 클 것이다.

더구나 내년 1월부터 유가 자유화가 전면 실시되면 더 올라갈 요인도 있다.

원화의 환율이 크게 오르고 있는데다 지금도 적자를 호소하고 있는 정유업계
상황을 볼때 쉽게 짐작이 간다.

물론 경쟁으로 인한 안정가능성도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정부가 국민생활의 기초를 이루는 유가인상에 좀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고유가정책을 통한 수요억제도 좋지만 에너지절약 기술개발 등을 통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또한 내년부터 시행될 유가자유화의 대비책도 세워야 한다.

산업용 유류가격이 올라갈 경우 기업의 원가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

자유화도 좋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정부가 정책의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익자부담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툭하면 세금을 신설하거나 올리는 등의
행정편의주의적 수법은 곤란하다.

또 거둬들인 돈을 유용하고 알뜰하게 쓰는 노력이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