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선 < 편집국 부국장대우 >

기업의 별이 명멸하는 임원 인사철이 시작됐다.

인사는 말 그대로 "사람을 쓰는 일"이지만 기업에 별이란 자리는 아무나
함부로 넘볼 수도, 달아줄 수도 없는 자리다.

현장 종업원의 잘못은 몇개의 불량품을 만드는 것으로 끝난다.

일선 세일즈맨이나 중간 관리자가 잘못을 저질러도 얼마간의 금전적 손실을
감내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경영정책을 결정하는 임원이 상황판단을 그르치면 기업이 크게
흔들리고 심하면 쓰러지기까지 한다.

누가 임원이고, 누가 사장이냐에 따라 회사의 명운이 달라진다.

실례로 일본의 혼다가 금년에 7년만의 최대 흑자를 낸 것이나 도시바가
히타치를 추월하는 이변을 빚은 것도 톱 매니지먼트의 수완이었다.

"인사는 만사"고 "인사는 성사"의 요체라고들 하지만 그런만큼 "인사는
난사"일 수 밖에 없다.

얼마나 난사인가.

주나라 태공망은 병서 "육도"에서 다음과 같이 일깨우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평판만 듣고 사람을 쓰면 안된다. 그렇게 인물을 고르면
패거리가 많은 자는 유리하고 적은 자는 불리하다. 그래서 충신들은 죄없이
죽음을 당하고 간신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육도의 지침에 따라 이번 연말 연초 기업인사에선 "이러 이러한 사람은
안된다"는 원칙부터 세워보자.

어려운 문제를 풀때 답이 아닌 것부터 지워나가는 것처럼....

육도에선 써서는 안될 사람을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1)지혜도 없고 계책도 없는 주제에 큰소리만 치는 사람 (2)평판과는 달리
실력이 없고,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심한 사람 (3)겉으론 욕심이 없는체
하면서 사리를 추구하는 사람 (4)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면서 남을 비방하는 사람 (5)확고한 식견이나 주관이 없이 부화뇌동하는
사람 (6)취미나 오락에 빠져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7)괴상한 종교나
이야기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사람.

또 2차대전중 독일 참모본부에선 "머리가 없으면서 의욕만 넘치는 사람"을
지휘관에서 배제시켰다고 한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스스로의 능력을 생각않고 일을 벌이고 또 무척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조직도 쓰러뜨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머리가 없더라도 의욕이 없으면 실수의 폭이 적을텐데..."가 그 이유였다.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일게다.

제임스 보렌이 말하는 다음 세가지 유형의 인간도 등용돼서는 안될 사람
이다.

책임지는 자리에 있을 때 결단을 회피하는 사람, 말썽 스러울때는 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남에게 위임하는 사람, 의심스러울 때 머뭇거리는
사람.

그러면 이런 유형들을 다 걸러낸 뒤 누구를 뽑을 것인가.

회사마다 독특한 인사원칙이 있을 테지만 지금껏 한국기업에선 두가지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한 것 같다.

하나는 "기업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사내의 공기"다.

회사의 전통을 기준으로 하다보니 과거의 예만 따르려는 전례주의자가
양산됐고, 사내의 공기를 살피다 보니 그저 "무난한 사람"이 톱으로 올라
가는 예가 많았다.

여기서 우리는 자문해 본다.

이같은 인선기준이 올해에도 내년에도 계속 적용될 수 있을까.

대답은 극히 부정적이다.

왜냐, 그건 이미 지나간 시대의 기준일 뿐이다.

지금,또 앞으로의 시대는 그런 경영자를 요구하지 않을게 분명하다.

기업의 전통과 사내 공기를 우리보다도 더 중시하던 일본의 기업들이
전례주의 사장을 비난하고 "무난한 사람"을 "무능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미국 IBM은 신임 사장의 조건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꼽고 있다.

GE의 잭 웰치회장의 경우는 "피로를 모르고 자기자신을 변혁시킬 수 있는
에너지"야말로 CEO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말한다.

기업 경영이란 일을 적극적으로 벌여야 할때와 수습해야 할 때, 강하게
나서야 할때와 부드럽게 양보할 때, 공격해야 할 때와 후퇴해야 할 때가
순간적으로 오고가는 종합예술이다.

그 기미를 잘 판단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판단을 실행에 옮기려면 "개혁의지"가 요구된다.

요컨대 지금은 어느 기업이건 변혁을 주도할 톱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아무개 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사"가 잘된 인사였다.

그러나 이번 재계인사는 "아무개로 변혁을 이끌겠다는 인사"가 되고,
그것이 잘된 인사이기를 기대해 본다.

경영에 보수적이라는 은행에서까지 "널뛰는 경영자가 필요한 시대"(S은행
C행장)라고 하지 않는가.

"구닥다리"-

그것으론 변혁의 시대를 살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