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고상품은 지적재산권이 될 것이다.

전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합돼가는 가운데 유형의 상품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무형의 상품을 판매하는 시대로 이미 들어서 있다.

브랜드를 팔고 지적자원(contents sources)을 팔며, 음악 영화 등의 엔터
테인먼트 산업의 경우 전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엄청난 저작권료를 벌어들이는
황금산업이 되었다.

선진국들은 "지적재산권"이라는 부가가치가 높은 무형상품에 대해 일찌감치
눈을 뜨고 국내에서부터 권리를 보호하고 그 침해에 대해서 엄정한 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 시장에서 지적재산권으로 돈을 벌고 있다.

그리고 누구도 예외없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지적재산권을 침해했을 경우
도둑이 되는 것이며 손해본 금액만큼 돌려 받고야 마는 무서운 장치를 마련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중국 태국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네번째로 꼽히는 후진국이다.

지적재산권을 행사하는 선진국 입장에서 볼때 우리나라는 "도둑의 소굴"인
것이다.

이러한 지적재산권 인정과 보호의 후진성은 단순히 불명예스러운 일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지적재산권 상품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혹자는 외국의 지적상품 지적재산권을 보호해봤자 우리 주머니만 축나고
그들 좋은 일만 해주는 셈인데, 적당히 도둑질해 쓰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말도 한다.

그러나 외국 지적상품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는 에누리없이 국산
그것에도 이어져 우리 산업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그 산업 분야중의 하나가 바로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계에서 "불법복제로 인하여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불법복제에 관한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도 않고 있고 이제는 진부한 얘기로 취급받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검찰의 불법복제 단속에 관한 기사를 신문 사회면의 조그만 귀퉁이에서나마
볼수 있으면 다행이다.

왜 이처럼 중요한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언론에서 가볍게 다루는 것일까.

혹시 누구나 할 것없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에 관한한 법범자로서의 동지
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 적발되어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우리 국민 상당수가 저작권법과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등에 저촉된 경험이 있다.

상당수의 국민이 분명히 저작권자가 있는 책의 일부 또는 전부를 무단으로
복사하거나, 길거리의 손수레에서 파는 1,000원짜리 음악 테이프를 구입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불법복제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타의에 의한 불법복제된 프로그램의 사용"이라고 하면 자신이 직접
프로그램이 복제된 디스켓이나 CD를 구해서 설치한 것이 아니고 컴퓨터를
구입할때 이미 불법으로 설치가 되어 있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조립품 PC 판매업자, 대기업 PC 대리점 할 것없이 "필요한 소프트웨어
다 설치해줍니다"가 핵심 판매정책이며, 100만원 이하로 떨어진 CD-롬 복사기
의 저가화바람은 소프트웨어를 쉽고 빠르게 불법 복제할수 있다는 편의성을
제공하여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판매가 오히려 산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자의 동의없이 책의 일부분 또는 전부를 무단 복사하지도 않았고,
1,000원짜리 음악 테이프를 구입한 적도 없으며, 불법복제된 프로그램을
사용한 경험이 전무하더라도 직장동료나 친구, 가족들의 그런 도둑 행위를
용인 또는 묵인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법에 저촉되는 것인지를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알았더
라도 내 주위에도 수없이 많은 공범자가 있는 상당히 경미한 도둑 행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미한(?) "도둑행위"는 범죄차원을 넘어 국가경쟁력을 약화
시키는 망국병이 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정보통신산업의 총아인 소프트웨어 업계가
이러한 도둑행위로 인해 많은 업체들이 제 먹을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소프트웨어업체들이 "불법복제"로 인해 경영난에 허덕이다
도산하게 된다면 종국에는 그 자리를 외국 업체들에 내주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엄청난 부담은 고스란히 사용자들 몫이 될 것이다.

또한 문화적이나 정서적으로 차이가 있는 외국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수 있는 일이다.

이제 사람들의 생활은 컴퓨터와 정보통신 인프라, 소프트웨어가 얽어놓은
거대한 가상 공간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컴퓨터나 정보통신인프라는 하드웨어적인 요소이고 유형의 상품이므로
아무도 훔쳐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무형인 동시에 각 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습관과 사고
방식을 담고 있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상품임에도 공공연히 훔쳐 사용함으로
써, 국내 업체의 존립을 방해하고 결론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신문화식민지화를
불러오고 있다.

꼭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회사가 직원의 도둑 행위를
부추기고 있고, 젊은이들은 친구에게 공범자가 될 것을 유혹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칫 문화적 "망국"을 불러올 이 엄청난 범국민적 범죄에 대한
정부나 국민의 대처방안은 너무나 미온적이었다.

이 문제는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일개 기업이나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의 국제경쟁력이 걸린만큼 정부차원에서 국민들에게 홍보를 하고 관련
법규의 문제점을 수정, 공포하여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등 불법복제 퇴치에 대한 보안책이 강구돼야 한다.

불법복제가 근절되지 않는다면 결국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지적재산권
도둑질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나라"로 자리매김되고,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들
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범법자"로 불려짐은 물론 국가적으로
치러야할 대가도 엄청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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