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대옥의 영구 앞에서 얼마나 슬피 우는지 하인들과 시녀들은
보옥이 저러다가 또 정신이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염려가 되었다.

보옥은 곡을 마친 후 철함사를 나서면서 멀리 만두암 쪽을 바라보았다.

이전에 진가경의 영구를 철함사로 운구하고 나서 희봉, 진종들과 더불어
만두암으로 쉬러 가서 여승 지능과 어울렸던 일들이 보옥의 뇌리에
떠올랐다.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이요 환상인 것만 같았다.

지금도 만두암의 만두 맛은 그대로일까.

만두암에서 먹던 만두 맛이 생각나자 보옥의 입안에 자기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보옥은 철함사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보채를 껴안고 몸을
섞었다.

대옥의 칠칠재까지는 서로 몸을 섞지 않기로 했는데, 이제 그 금기기간이
끝난 것이었다.

보옥은 자기가 안고 있는 몸이 보채의 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그 동안 보채의 사랑에 마음이 움직여서 그런지 온몸 구석구석에
기운이 돌면서 남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보채는 보옥과 교합하는 쾌감을 만끽하면서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보옥이 모든 면에서 안정을 되찾아갈 무렵, 보옥의 배다른 누이
탐춘이 시집을 가게되었다.

가정의 첩 조이랑의 소생이긴 하나 대관원 자매들을 모아 해당시사를
발기할 만큼 시재에 뛰어나고 글씨를 잘 쓰던 탐춘이 해강통제 주경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기 위해 멀리 남방으로 떠나갈 채비를 하였다.

희봉은 탐춘에게 전달한 선물을 들고 시녀들과 함께 탐춘이 기거하고
있는 대관원 추상재로 들어섰다.

대관원은 보옥과 보채, 대옥들이 떠나가는 바람에 그들이 기거하던
이홍원 형무원 소상관들이 비게 되어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대관원 곳곳이 낡아서 허물어져도 수리를 하지 않아 점점 퇴락해가고
있었다.

축산과 정원들도 손을 보지 않아 잡초들이 우거질 대로 우거져 승냥이
같은 짐승들이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희봉이 추상재 대문을 들어서 탐춘의 방으로 다가가는데, 저쪽 축산
모퉁이에서 하늘거리는 옷차림으로 누가 돌아나왔다.

탐춘이 산책을 하다가 오나 하고 바라보니 이게 누군가.

진가경이 아닌가.

"아니, 가경이가 웬일이야?"

희봉은 진가경이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산사람
대하듯 말을 걸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희봉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지금 자기가 유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숙모님께서는 제가 죽으면서 부탁한 말 대로 하시지 않고 부귀
영화를 좇는 데만 급급하셨습니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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