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는 운전면허시험에서 도로주행시험이 추가된다고 한다.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정부의 의지가 엿 보이고, 새로운 제도가 교통사고를
줄이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응시자와 심판관 사이에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뒷거래를
막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아직 남는다.

공학에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있다.

엔트로피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물질이나 구조-일명 시스템의 무질서
정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방을 깨끗이 청소해 두었다고 하자.

처음에는 깨끗이 정돈된 방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어질러져서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일이라는 에너지가 가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상황
즉 방이 더 정돈된 상태로 변하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다.

이와같이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질서해지는 경향
즉 엔트로피 값이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한다.

자동차를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해 보자.

처음 출고된 차는 모든 부품이 제대로 작동해 운전하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즉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엔트로피가 높아져서 소음이 커지고
고장나는 확률도 높아진다.

따라서 잘 설계된 자동차는 고장이 없는 자동차 즉 엔트로피의 증가하지
않는 차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동차 설계자들은 엔트로피의 증가 속도를 낮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시스템을 되도록 간단하고 단순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단순한 시스템을 가지고도 같은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 시스템의
고장날 확률 즉 엔트로피가 증가할 확률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이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너무 쉽게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최근 발생한 버스 요금 인상 부정 사건만 보더라도 사회라는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엉성하다고 불법적으로 요금이 결정돼 이를 방지할
아무런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엔트로피가 증가할 수 있는 취약 분야가 곳곳에
널려있어서 아무리 부분적인 보완장치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보고 전체 시스템의
엔트로피증가를 억제해 줄 수 있는 시스템공학적 설계 개념을 도입해
보는 것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첫째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한 쪽으로 모아서 제어를 쉽게할 수 있도록
만들어 엔트로피 증가를 억제한다.

음란물을 포함한 유흥산업을 그 예로 들어 보자.

선진국은 물론이고 사회주의 체제였던 동유럽 국가들까지 합법적으로
포르노 상영관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포르노 금지 국가이지만 과연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깨끗한 나라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유흥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주택가까지 음란 유흥 업소가 범람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이제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포르노를 합법화하되 지역을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출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물론 이런 곳에서 일어나는 범죄 행위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로 문제를 단순화하고 이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정이 발생하는 원인을 금전적 유혹때문이라고 단순화시켜
공직자나 이해 당사자들이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함정수사 제도와 같은 특별한 조치를 도입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공직사회가 비교적 깨끗하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종종 연방 수사국의
함정수사에 말려들어 공직자가 구속되는 소식을 접할 수가 있다.

이러한 함정수사 제도는 혐의가 포착되면 수사를 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범법자를 찾아내어 처벌한다는 의미도 있고, 많은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예방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는 인권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이미
너무 복잡하고 무질서하여 엔트로피의 증가를 방지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방식을 시험적으로 도입해 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이 없이는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유지하기 어렵기에
특별한 조치를 통해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고 난 후 단계적으로 보다
합리적인 제도들을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건전한 시스템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법의 제도를 지키고 기본적인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의 일부는 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에 맞도록 각종 제도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마치 자동차를 설계하는 엔지니어가 자동차 사용자들이 항상 자동차를
조심스럽게 다루지는 않는다는 전제하에 자동차 설계에 임하는 것처럼.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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