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의 태원연간(376~396)에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강을 따라가다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진대의 전란을 피해 숨어 들어간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동안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라는 글에 나오는 동양의 유토피아 "무릉도원"
이야기다.

"몽유도원도"는 이 "도화원기"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세종때 궁중 화원이었던 안견이 안평대군 용의 꿈이야기를 듣고 3일만에
완성시켰다는 그림의 내용을 보면 도연명이 글로 그려놓은 도원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

안평대군은 "도화원기"를 읽어 늘 마음속에 되새기고 있다가 도원을
꿈속에서 재발견한 셈이다.

1447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이처럼 주제자체도 흥미롭지만 당대
최고의 거장인 안견의 걸출한 대작(38.7 x 106.5cm)일뿐아니라 서예의
대가 안평대군의 발문과 찬사가 들어있다.

또 신숙주 박연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서거정등 21명이나 되는 고사들의
친필 제찬도 실려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조선초기의 시 서 화 3절의 경지를 보여주는
기념비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초 이래 일본 천이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이 작품이
언제 어떻게 일본에 건너가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지금까지 확인된바로는 이 작품의 제일 오래된 소장가는 구주 록아도
출신의 오진구집이었고 그가 작품을 소장한 1893년11월이전에 이미 일본에
건너가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해방직후 한때 일본인 소장가들이 "매물"로 내놓아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도 교섭이 온 적이 있었고, 일설에 따르면 1950년에는
부산에 이 작품을 옮겨다놓고 팔려했다고 한다.

당시 최남선 장택상씨등도 이 작품을 보았으나 너무 고가였던지,
가치판단을 못했던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고미술상들의
증언이다.

"몽유도원도"는 1939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다가 지금은 중요문화재로
변경돼 있다.

지난 86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개관 특별전때 한달동안 꿈속에서처럼
첫선을 보였던 이 그림이 오는 14일부터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몽유도원도와 조선전기국보전"에 다시 전시된다는 소식이다.

우리 문화재를 외국에서 빌려다 전시할때마다 "배주고 뱃속 빌어
먹는다"는 속담이 떠오르지만 우리가 문화재를 잘못 간수한 죄이니 어쩌랴.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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