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3월, 멕시코의 티후아나 엘플로리도공단.김광호삼성전자부회장이
이제 막 도착한 검은 세단에서 내리며 손을 흔든다.

도열했던 관중들이 박수를 보낸다.

이형도삼성전기사장 손욱삼성전관부사장등 그룹 전자계열사의 사장단들도
잇따라 도착, 김부회장을 중심으로 모인다.

그리고 테이프커팅은 시작됐다.

이날 삼성은 거대한 북미시장공략을 위한 전자복합단지를 이곳에
준공했다.

이건희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모든 행사준비와 주빈으로서의 역할은 김부회장이 맡았다.

삼성그룹으로서는 결코 작지 않은 행사였지만 김부회장은 이른바
전자소그룹장으로서 오너회장의 역할을 완벽히 대신한 셈이다.

소그룹장 제도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된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지난 몇년사이 일부 대기업그룹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동일그룹내
유사업종의 계열사가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사실 그룹의 오너회장이 수십개에 이르는 계열사의 경영현황을 일일이
챙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 한회사의 보고만 받아도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전계열사를 전자 금융 기계등 큰 업종군으로 대분류하여
각 업종군을 총괄하는 책임을 맡긴 것이 바로 소그룹장인 셈이다.

대기업그룹의 총수가 국방장관이라면 이들은 참모총장격이다.

각계열사 사장들은 야전사령관으로 비유할수 있을 것이다.

소그룹장중 상당수는 그룹의 중추적인 경영기구인 운영위원회나
회장단회의의 멤버들이다.

그만큼 실세라는 얘기도 된다.

예컨대 삼성그룹의 경우 4명의 소그룹장이 8인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
모두 참여한다.

LG나 대우도 비슷하다.

삼성그룹이 소그룹제를 도입한 것은 94년 10월 중장기사업계획및
구조조정을 발표하면서부터다.

LG는 90년 "21세기를 향한 경영비전"을 선포하면서 소그룹제와 유사한
사업문화단위(CU)제를 시행했고 대우 한화 한보가 뒤를 잇는등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삼성은 전자 전기 전관 코닝 SDS를 전자소그룹으로 묶은 것을 비롯
전자 기계 화학 금융등 4개의 소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소그룹은 사업계획수립 투자 자금조달 인사등도 독자적으로
하고 있다.

그룹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큰 투자와 전무급이상의 고위직 인사만
그룹에서 관장한다.

LG그룹은 모두 21개 CU를 두고 있다.

계열사가 51개인 만큼 평균 2~3개사를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LG의 CU장은 경영에 관한 책임과 권한을 대폭 위임받고 있다.

심지어 가능한한 장기재임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룹회장의 방침이다.

자율경영을 하다보니 CU별로 직급체계도 다르고 급여나 복리후생도
다르다.

LG는 CU장이 1년에 한차례 그룹회장과 정례미팅을 갖고 사업비전과 전략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컨센서스미팅이란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우그룹은 지난해 회사별 회장제를 도입하면서 자동차 중공업 전자 통신
등 6개 소그룹으로 갈라 회사별 회장이 각소그룹을 관장하는 틀을 갖추고
있다.

이들 6명의 소그룹장은 회장단간담회멤버로 참석하고 있다.

대우그룹은 소그룹제를 도입한지 1년여밖에 안됐지만 벌써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무역부문 1백억달러수출및 금탑산업훈장수상, 건설 국내수주고 1위, 전자
및 중공업 올매출 증액책정및 달성예상 등이 그것이다.

대우그룹 관계자는 "그룹 경영의 패러다임을 통제와 조정으로부터 자율과
책임으로 바꾸고 급변하는 세계무대에 대응할수 있는 국제적기업을 만들기
위해 소그룹제를 도입했다"며 현재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화그룹은 작년 3월 25개 계열사를 13개로 축소하고 계열사를
5개소그룹으로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한 그룹구조개편을 단행했다.

2년동안의 준비를 거쳐 시행된 이 조치로 <>화학 무역 건설 통신
<>화학 에너지 <>기계 <>금융 <>유통 레저등 5개 소그룹이 탄생했다.

현대그룹이나 한보그룹은 2세들에 의한 소그룹 경영형태를 보이고 있다.

현대의 경우 정주영명예회장의 아들들이 전자 중공업 유통 서비스
금융등 각분야를 나누어 실질적인 경영을 맡고 있지만 여타 기업의
소그룹장 제도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분할경영체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한보그룹도 올3월 정태수총회장이 3남인 보근부회장을 회장에 취임시키는
과정에서 아들 4형제에게 업종별 경영을 맡기면서 소그룹제를 도입했다.

한보 소그룹의 특징도 향후 2세들에 대한 재산분할구도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그룹경영도 다른 그룹보다 훨씬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재계는 소그룹제가 매머드와 같은 그룹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경영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타 그룹으로도 점차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김낙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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