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만 많으면 된다. 주유소 숫자 만큼 시장점유율은 자연히 올라가게
돼있다"

모 정유회사 판매담당 임원의 말이다.

한 마디로 "정유는 마케팅이 필요없는 산업"이라는 얘기다.

지난 94년 정유업체들이 주유소쟁탈전을 벌인 이유도 이 한마디에 잘 담겨
있다.

운전자들이 기름이 떨어질만 하면 아무 곳이나 가까운 주유소를 찾는
현실에서는 주유소 많은 회사가 "확률경쟁"에서 이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맞는 얘기다.

가격이 묶여 있는 현실에서 다른 노력을 할래야 할게 없어서다.

그러나 내년엔 자유화로 판이 바뀐다.

정유업계들이 올들어 그동안 주유소에 맡겨 두었던 고객관리에 직접 뛰어
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새로운 판에 익숙해지기 위한 노력이다.

유공 관계자는 "특별히 마케팅에 나선다고 시장셰어가 올라간다기보다는
가만히 앉아있다간 후발업체에 시장을 잠식당할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유업계가 마련한 새로운 전략이 "고정 고객 잡기"다.

항상 자기 회사 주유소만을 찾도록 하자는 것.

올들어 쌍용정유를 제외한 4개사가 제품이나 기업이미지 광고를 늘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골고객 확보의 출발점은 제휴카드와 상품권.

자사 휘발유를 주기적으로 넣는 고객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플라스틱머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연회원 200만명을 돌파한 유공비씨카드를 예로 들면 가입자는 이용
실적에 따라 1,000원당 3마일의 대한항공마일리지 또는 사은품을 선택해
받을 수 있다.

상품권 발행도 단골고객확보의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서상품권과 달리 주유상품권은 정유사가 지정돼 있어 단골고객확보에
아주 유용한 수단으로 쓰인다.

정유사들은 주유소에 각종 부대시설을 운영하면서 주유소를 찾을 만한
곳으로 만드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경정비업체 꽃집 필름인화점 골프장 편의점 분식점 등이 같이 들어선
주유소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름냄새만 나던 주유소를 청결한 쇼핑 문화공간으로 바꾸어가며 손님들을
불러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유사들의 단골만들기 전략은 아직까지는 공격적인 마케팅수준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각사가 차별화된 전략보다는 모두 비슷비슷한 형태로 서비스를 강화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주유소만 많다고 점유율이 올라가는 시대는 끝난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