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연세대 교수 / 법학>

지난 4월24일 김영삼대통령의 신노사관계구상발표이래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에 의해 마련된 노동법개정안이 1996년12월3일 정부에 의해 확정됐다.

물론 향후 차관회의.국무회의 및 국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남겨놓고
있어 그 내용이 수정될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전반적인 골격 및 체계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노동법개정안에 대해 노.사간 당사자는 물론 정치권 및 학계
등에서도 일부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노동법개정안은
그 개정의 절차및 내용면에 있어 과거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첫째 노동법개정안의 입법과정을 살펴보면 동개정안의 주요체계 및 내용을
정한 노사개혁위원회에는 노.사대표 및 공익위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노사대표는 토의과정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지엽적인 부분까지
십분표출하여 이를 토론하고 반영시킬 수 있는 민주적 기회가 부여됐다.

게다가 민노총은 불법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노사개혁위원회에 참가가
인정되었다.

종래의 입법관행에 의하면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직접 입법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대부분 정부가 이해관계 당사자인 노.사양측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타협안을 도출하기 위한 유래없는 민주적 절차라고 평가돼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는 노사관계문제에 관한 대부분의
국내석학들이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 석학들은 개개인이 모두 학문적 깊이나 권위에 있어 일가견을
갖고 있는 대가로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격의없이 수개월동안 특정
주제를 놓고 논의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모두 올바른 노사관계정립을 위해 노.사당사자간의 이해관계를
공익차원에서 조정함은 물론 학문적 차원에서도 노동법개정안의 격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다.

한편 이수성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부의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
에서 개정안을 수차례 검토.수정하고 심지어는 대통령보고까지 마친
개정안을 다시 수정하는 등 끝까지 심혈을 기울인 부분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공권력행사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노사의 합의를 최대한으로 유도하되 합의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해서는
국익차원에서 정부가 결단력을 내린 것으로서 앞으로 민주사회에서 어떻게
주요정부정책이 결정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지극히 모범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노동법개정안의 주요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사용자측은 지난 수년동안 근로자측의 반대로 인해 입법화되지
못했던 변형근로제.정리해고제및 무노동.무임금의 원칙 등을 법제화하는
소득을 얻었고 이와 반대로 근로자측은 복수노조금지, 교원의 단결권금지,
제3자개입금지 및 정치활동금지에 관한 기존 관련법령을 폐지하는 등
노동법개정의 커다란 골격은 각자 원하는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측은 사용자측대로, 근로자측은 근로자측대로
지극히 노동법개정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나 양측의 이러한 자세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입법과정에 있어 관계당사자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정부는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부는 국익차원에서 무엇이
가장 바람직한가를 판단해 일방의 견해를 전폭 수용할 수도 또는
양자의 겨해를 절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때 정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사양측의 이해관계를 떠난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의 적용이다.

현재의 노동법개정에 대해서는 "국가경쟁력"과 "근로기본권"의 두가지
기준중에서 "국가경쟁력"쪽으로 기울어 결과적으로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개정안이 마련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가경쟁력"과 "사용자측의 이해"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 바 양자는
엄격하게 구분되어 "국가경쟁력"은 국익차원에서 별도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국익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ILO협약등 국제법규의 준수, OECD가입
등으로 인한 선진국 수준에 부합되는 노동법령의 보유및 국가경쟁력의
강화방안등이다.

소위 복수노조금지.제3자개입금 지및 정치활동금지 등의 3금은 국제규범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과감히 풀어야 하며 변형근로제.정리해고제및
파견근로제 등의 3제는 선진국으로서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과감히
도입해야 할 것이다.

국익차원과 관련된 사항은 노사당사자간의 의견을 존중하되 이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정부가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야하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노사현실을 반영해 그 내용및 시기 등에 있어 유연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와같은 관점에서 볼 때에 노동법 개정안은 이러한 기준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여타의 부분에 있어서도 근로자측은 교원노조의 인정, 긴급명령제도의
도입및 직권중재적용대상의 축소 등을, 사용자측은 쟁의기간중의 대체근로,
전임자급여제한및 휴업수당의 제한 등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외관상으로는 사용자측의 요구를 더 많이 수용한 것으로 보이나
근로자측이 얻은 사항은 노사관계의 기본틀을 재정립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굵직한 사항이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노조전임에 대한 급여금지는 이것이 노사간의 자율적인 협의
사항이라는 점에서, 또한 쟁의기간중 대체근로의 허용은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실업률이 높고 노사관계가 대립적이라는 점에서 좀 더
심도있게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신노사관계법의 제정을 계기로하여 일본 노동법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종래의 노동법은 그 내용및 학설에 있어 일본 노동법을 계수하여
우리나라의 노사관계에 부합하지 아니함은 물론 국민의 의식을 일본화하는
등 부정적 측면이 존재했다.

최근 일본의 극우화.보수화 경향에 비추어 볼 때에도 지극히 경계하여야
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