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에서 체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 것은 그 연원이 아주 오래된다.

중국 최고의 의서인 "황제내경"에는 체형을 음양오행에 따라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 음양화평인으로 분류하고 특징적 성격까지 설명해
놓았다.

그리스에서도 인체가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의 4체액으로 구성됐다고
하는 히포크라테스의 "체액병리설"에 이어 갈레노스의 "사기질설"이
등장했다.

그러나 현대의학에서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우선 병의 증세등 실증적
진단에 따른 치료나 처방이 중시됐지 환자의 체질에 대한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조선말기의 한의학자 이제마 (1837~1900)가 체계화한 "사상체질의학"이
"제3의 의학"으로 오늘날 주목을 받는 까닭도 그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가 "주역"의 원리를 따라 사람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의
사상체질로 나누어 체계화 하게 된 데는 뚜렷한 동기가 있다.

그에게는 하체가 허약해 오래 걸을 수 없고 음식을 먹으면 토하는
지병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많은 의서를 탐독하고 그 처방에 따라 온갖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오랜 연구끝에 그가 깨달은 것은 자기의 병은 태양인이 기름진 음식을
먹고 마음속에 분노와 비애를 많이 일으켜서 간장과 신장의 기를 손상시킨
탓이라는 사실이다.

그후 그는 담백한 음식을 먹고 정신수양으로 마음의 평정을 이룸으로써
고질병을 고쳤다.

그는 생생한 경험을 통해 인간 심성의 희로애락이 오장육부에 영향을
미쳐 그것의 대소허실로 나타난다는 사상체질론의 요체를 터득하게 된다.

똑같은 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는 이론도 이같은
자각에서 나왔다.

함남 함흥출신인 그는 왕족의 후예로 어릴때부터 무관이 되는 것이
꿈이어서 호도 동무라고 지었으나 군관생활을 1년만에 청산하고 진해현감도
1년만에 사직했다.

1894년 사상체질의학을 체계화한 저서 "동의수세보원"을 완성한 뒤
낙향해 의업에 종사하다 생을 마쳤다.

12월은 "이제마의 달"이다.

서양의학의 한계가 속속 드러나면서 건강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사상체질의학에 거는 기대도 그만큼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제마의 이론소개에 급급할뿐 체질감별의 객관성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밥그릇싸움에만 몰두해 있는 우리 의약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