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환 <애드마인드 대표>


기업의 감성적인 이미지가 매출신장은 물론이고 조직 내부의 깊숙한
곳에까지 작용하는 자기혁신의 키워드라는 것은 이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경영의 원리다.

기업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마력을 가진 홍보의 한 방법이 바로 심벌
로고 간판 근무복 서식 등 모든 시각수단을 동일한 이미지로 통일하는
CI(Corporate identity)다.

훌륭한 CI를 도입하면 기업의 매출이 증가하고 사원들의 애사심이
높아진다는 것은 경험적으로도 널리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너나없는 기업들이 CI라는 마법의 칼을 정성껏 벼리어 감성적인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른바 "CI러시"라 불리는 최근의 흐름을 좀더 깊숙이
들여다 보면 향후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물론 CI는 기업에 어떤 식으로든 잃게 하는 것보다 얻게 하는 것이
많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많은 돈을 들여 할 바엔 제대로
하고 감성전략의 이면과 반대급부까지 고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수 있다.

그중 가장 우려할 만한 한 가지가 바로 요즘 대그룹에서 유행하고
있는 그룹 통합CI 추세다.

그룹의 통합CI는 많은 장점들을 지니고 있다.

이미지의 동질화 집중화를 추구하는 것이 CI의 목표라는 원론적인
관점에서도 통합CI는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CI에 대한 안목면에서나 마케팅 경험면에서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 있는 유수의 외국 선진기업들이 이 통합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업별 상품별 개별 이미지쪽으로 강하게 돌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를 광고학에서는 이미지를 분할한다고 하여 디비전 전략(Division
Marketing)이라 하고 마케팅학에서는 차별화전략(Differentiate
Marketing)이라 한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심지어 그들은 "질좋은 중저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굳어진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새로 개발한 고가제품에서는 의도적으로
메이커를 의식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렉서스(LEXUS)란 브랜드를 붙이고
고급품 시장을 공략하여 대성공을 거둔바 있다.

미국의 경우 디비전전략은 이미 보편화 단계인데 펩시의 자회사인 KFC,
피자헛이 사업별로 독자적 브랜드를 구축한 적이 있으며, 다단계판매회사인
누스킨은 상품별로 사업부문과 브랜드 이미지를 디비전해 성공한 대표적
예로 꼽히고 있다.

이미지를 블록화한다는 것은 곧 어떤 브랜드 이미지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나 위기가 발생했을때 기업 전체의 이미지나 타 제품 이미지에까지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타격을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감성 마케팅의
방어전략이라 할수 있다.

통합CI는 감성 파워를 얻는데도 유리하지만 공든 탑이 한꺼번에 무너질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감성 마케팅에 경험이 많은 세계 선진 메이커들은 기업을 단기간에
성장시키는 것보다는 꾸준하게 시장지배력을 가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방어적인 전략까지 철저하게 안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좀 큰 기업이면 전자제품은 거의 전 품목을 망라하고
금융 자동차 건설 유통 에너지 소프트웨어 심지어 생활용품까지 동일한
CI를 적용하는 것은 단견이라고 볼수 있다.

이는 동일한 감성 메시지를 반복해서 심어주는 데는 지름길이지만
너무 잡다한 분야까지 통괄하려다 보니 오히려 실제 제품과 연결되는
느낌이 약화될 가능성도 동시에 높아진다.

우리 기업들의 이러한 획일성은 전 산업분야에 걸쳐 자사의 독보적인
뿌리를 내려 업종간 시너지 효과를 얻으려는 이른바 "기업왕국"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사업의지일뿐 감성전략이 돼서는 안된다.

좀더 영리하고 실리적인 전략이 없이는 감성 마케팅이 제 효과를
거둘수가 없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감성이 매우 막연하고 유동적인 것이라 말하지만
광고인의 관점에선 색채와 디자인을 보여지는 대로 매우 섬세하게 받아들여
정치하게 분석까지 해내는 정밀한 프리즘과 같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만일 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철저한 개별 브랜드 전략으로 무장한
각 분야의 외국 제품들이 국내에 진출하여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펼칠 때
과연 우리의 통합CI가 어떻게 대항할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마치 미술에 소질이 있는 고등학생과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그림
그리기를 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전자제품 하면 소니, 휴대폰 하면 모토로라와 같은 이미지의 등식을
세우고 감성세뇌를 강요하는 외국기업들의 이미지전략은 한가지 제품에
관한 한 실로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제로섬을 갈망하는 시장지배
전략이라는 것을 마케팅의 역사에서 새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는 강력한 기업 이미지의 구축이라는 감성 마케팅의 허상을
좇아가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른다.

개방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기업 이미지의 파워가 아니라 브랜드 파워이며
그것이 누가 시장을 지배하느냐는 생존게임을 결판내게 된다.

따라서 우리도 감성전쟁의 주력병기인 CI판도를 제품별로 다시 짜고
가다듬어야 한다.

이미 통합 CI를 도입한 기업들은 여기에 개별적으로 BI(Brand Identity)
기법을 접목하거나 아니면 주력상품에만 BI를 도입하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해 봄직하다.

이는 주력상품에 대한 이미지 파워를 증대시키면서 타 제품, 계열사와
분리된 영역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아직까지도 외국 선두기업들의 국내시장 공략이 본격화하지 않은 지금이
글로벌 감성마케팅 전쟁에 대비하여 디비전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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