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향한 무역정책의 목표는 경상수지의 균형을 달성하는 것이 돼야
한다.

우리 나라가 지난 50여년간 거의 매년 적자를 기록하면서 세계시장의
교역확대에 기여해 왔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매년 흑자를 내서 외채를
상환하고 해외투자와 차관공여를 통해 국제사회에 기여해야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야 하는 것이다.

무역수지보다도 경상수지를 지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서비스교역의
비중이 점점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WTO체제의 출범을 계기로 금융 해운 통신 등 서비스분야의 시장개방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며 기업세계화에 수반된 경영노하우와 기술의
국제거래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산업구조의 지식집약화및 소프트화가 본격화되기 때문에
재화와 용역을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다.

경상수지의 균형을 중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중상주의적 발상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경제의 건전성과 산업경쟁력을 반영하는 척도로써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계속되는 적자의 원인을 단순히 저축과 투자의 불일치,
물가불안, 환율고평가 등과 같은 거시지표의 불균형에서 찾는 것은 올바른
진단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기술력의 미흡, 부품-소재산업의 낙후 등과 같이 미시적인
자원배분의 불균형에서 찾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투자를 줄이면 수입도 따라서 줄어들겠지만 성장둔화와 실업증가의 고통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경기순환적 적자의 치유수단은 될 수 있을지언정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적자치유에는 부적절하다.

물가안정은 명목금리, 명목임금, 명목환율, 명목지가의 안정을 가져올
수는 있겠으나 실물경제의 균형을 가져오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환율은 가격경쟁력에 대해서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비가격
경쟁력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다.

고부가가치제품으로 옮겨 갈수록 수출의 가격탄력성이 낮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평가절하로써 만성적 적자를 치유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적절한 시기의 적절한 산업구조정책이 경상수지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하여 우리의 과거 경험을 되살려 보자.

70년대에 정부는 의욕적으로 중화학공업을 건설하여 대규모 조립공장들이
완성되었다.

중화학공업의 수출입차이를 보면 처음에는 수입초과였으나 그 규모는
꾸준히 감소돼 1982년 이후에는 거의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부품과 소재의 수입의존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1980년대에 정부가 산업구조정책을 포기한 채 안정화시책에만
매달리는 과오를 범하지 않고 작년에 뒤늦게 시행된 자본재산업
육성시책에 버금가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더라면 지금쯤은 우리도
경상수지적자 때문에 곤경에 빠져있지는 않을 것이다.

수출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 금지보조금으로 묶이게 된 WTO체제하에서는
수출진흥책의 주된 내용은 경쟁력 강화 또는 산업구조고도화시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된다.

그런데 산업정책에 있어서도 특정성이 있는 보조금은 금지되고 기술개발
환경보존 지역개발 인프라구축 등 특정성이 없는 보조금만 허용되기
때문에 정부의 입지가 크게 좁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정해진 규범에 따르기만 하던 시대의 근시안적인 생각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이제는 WTO및 OECD 가입국으로서 국제규범의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정부는 강화된 보조금규정으로서 다른 나라들의 손발을 묶어
놓는데 일단 성공한 뒤에,공격적이고 전략적인 통상정책을 구사해서
자국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앞장서서 도와주고 있다.

또한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과 CALS의 보급을 정부주도로 추진하고
정보기술협정을 통하여 반도체와 같은 첨단제품의 무관세화를 성취하려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자기들이 필요한 수출지원은 자유롭게 제공하면서
경쟁국들이 필요한 수출지원에 대해서는 자유스럽게 규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정부도 이제부터는 우리 기업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국제규범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설득력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동지"를
규합해서 강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에 와 있다.

최근 소비재수입의 급증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소비재수입
억제는 유효한 수단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효과도 약하다.

다만 수입자유화가 경쟁압력으로 작용하게끔 수입업의 독과점을
배제하고 생산업자의 수입권 장악을 억제,병행수입을 확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강화된 국제규범의 제약하에서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고 적극적인
통상전략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정부조직의 효율화와 전문인력 확보를
통한 정부경쟁력의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과거에 우리 정부는 민간보다도 우월한 지위에 있었으나 그동안
민간부문은 눈부시게 발전한 반면에 정부부문의 변화는 더딘 나머지
이제는 민간부문이 더욱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선진국 정부와 비교하더라도 우리 정부의 경쟁력이 뒤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우수한 전문인력의 영입과 관련 부서간의 유기적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는 무역통상기능의 리스트럭쳐링이 절실히 요구된다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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