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 청문, 아니 습인을 불렀어"

보옥이 자기가 습인을 청문으로 잘못 부른 사실을 알고 말을 더듬거렸다.

"그래 무슨 심부름을 시키려고 불렀어요?"

"그러고 보니 무엇 때문에 불렀는지 모르겠군"

보옥이 멋쩍은 듯 입맛을 한번 다시고는 돌아 누웠다.

습인도 일어날 채비를 하다가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새벽녘에 또 보옥이, "청문아, 청문아!" 하고 불렀다.

습인이 그 소리에 깨어나 보옥쪽을 바라보았다.

보옥은 벌써 일어나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아니, 도련님, 왜 그러세요?"

"방금 청문이 내 꿈속에 나타나 하직 인사를 하였어. 청문이 죽었단
말이야"

"꿈에 보았다고 죽었다 단정을 내릴 수는 없지요.

날이 밝으면 사람을 보내어 청문이 소식을 알아볼 테니 좀더 주무세요"

습인이 보옥을 달래보았지만 보옥은 청문이 죽은 것이 확실하다면서
흐느끼기를 그치지 않았다.

날이 밝자 습인이 견습시녀를 청문의 사촌오빠 집으로 보내어 청문의
소식을 알아오게 하였다.

보옥이 견습시녀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마침내 견습시녀가
청문의 부고를 들고 왔다.

"청문 언니는 죽기 직전까지도 도련님을 찾으셨대요.

그리고 자기는 화신이 되라는 옥황상제의 칙령을 받아 가는 것이므로
죽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나요.

그러면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는 시각을 조금 더 뒤로 미루기 위하여
지전을 만들어 불사르고 물밥을 해서 뿌려달라고 사촌오빠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대요.

그러면 저승에서 온 귀졸들이 지전을 줍고 물밥을 넉느라고 사람
데려가는 일을 잠시 잊는다나요.

하지만 청문 언니는 세상 떠나는 시각을 별로 그렇게 뒤로 미루지
못했는지 곧 숨을 거두었어요."

보옥이 견습시녀의 말을 침통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허공에 시선을
둔 채 혼자말처럼 물어보았다.

"청문이 꽃 전체를 다스리는 신령이 된 거야, 꽃 하나를 맡아 다스리는
신령이 된 거야?"

견습시녀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하며 습인을 흘끗
쳐다보았다.

습인이 눈짓으로 적당히 지어내어 대답을 하라는 암시를 보내었다.

견습시녀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나서 대답했다.

"청문 언니는 꽃 전체를 다스리는 신령이 아니라 연꽃 하나를 다스리는
신령이 될 거래요"

"연꽃"

보옥이 몽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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