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부터 연좌라는 처벌제도가 있었다.

범죄자와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자에게 연대적으로 그 범죄의 형사
책임을 지우는 제도다.

그것은 행정상의 관계자 또는 친족관계가 아닌 일정한 관계가 있는 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연좌와는 구별된다.

중국에서는 진나라 문공때 부모 처자 형제 등 삼족에게 연좌제를 처음으로
시행했고 한나라 초에도 이삼족법이 제정되었다.

그뒤 후위에서는 입양된 자, 수나라에서는 첩과 출가한 자매를 포함시키는
일도 있었다.

당나라때에 와서는 연좌제가 모반죄에 적용되면서 그 범위가 확정되었고
그 형률이 명과 청에 계승되었다.

한반도의 경우에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 연좌제가 생겨났다.

부여에서는 범법으로 사형에 처해진 자나 살인자의 가족을, 또
고구려에서는 중죄로 사형에 처해진 자나 모반자의 처자를 참수했다.

7세기 이후의 신라에서는 반역죄의 경우엔 친족의 범위가 넓어져 친족
외족 처족 등 구족을 처벌했다.

고려시대에는 연좌형이 모반죄에 과해졌고 당나라의 "당률"의 영향을 받아
친족의 범위도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손자녀 백숙부 등이 연좌 대상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의 "대명률"조문이 원용되었다.

모반죄의 경우 대역죄인은 참형.

아버지와 16세이상의 아들은 교수형에 각기 처하고 16세이하의 아들,
어머니와 딸, 처첩, 손자녀, 형제자매, 며느리는 종으로 삼으며 백숙부와
조카는 유배되었다.

그밖의 범죄에는 연좌의 범위가 처자에 한정되었다.

이처럼 가혹한 역사를 지닌 한국의 연좌제는 갑오개혁때인 1894년 "범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시행하지 말라"는 칙령이 내려짐으로써
폐지되었다.

근대 형법의 형사책임 개벌화 원칙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도 사상범의 경우 고급공무원 취임 또는 해외여행이
제한되었던 행정적 연좌제가 있었다.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근대법 원리에 반하는 것이었다.

제5공화국 이후의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연좌제 금지조항이
신설되어 있다.

그런데 법원이 비행소년 부모에게 강제로 특별교육을 받게 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제도를 소년법 개정안에 포함시키겠다고 나섰다.

그것은 분명히 근대법 원리에 입각한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신종 부모
연좌제다.

보다 신중한 법 개정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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