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반짝이는 아파트 베란다의 "반딧불".

그것은 이 시대를 사는 수많은 아버지들의 현주소이다.

밤중에 밖에까지 내려가 피우기는 귀찮고 안에서 피우기에는 "역부족"인
까닭에, 체신머리없는 몰골로 한대 피우다 보면 맞은편 아파트의 반딧불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 결코 드물지않다.

동병상련이란 표현은 너무 거창할지 모르지만, 자연스레 쓴 웃음을
머금게되는 것은 도리가 없다.

최근들어 "아버지"란 소설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감정, "별볼일 없는 아버지"인 스스로 위치를 되돌아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근엄하고 권위주의적인 어릴적 아버지상에 길들여진 탓에 아내나 아들
딸의 눈에는 항상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아버지로 비추어지게 마련인
이 시대의 아버지들.

잘 자라준 아들 딸이 자랑스럽고 아내에게는 항상 미안스럽게 느끼면서도
이를 표현하는 것을 어색해하고 서투를 아버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하교 졸업식사진에 하나같이 나와있지 않은 아버지에 서운한 아이들의
이야기.

그런 흔하디 흔한 얘기를 다룬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게
신기하다.

어쩌면 그것은 "아버지 위기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이 시대가 그런 시대라는 기분은 대법원의 소년법 개정움직임을
접하면서도 느껴진다.

비행청소년 부모를 법원에서 "특별교육"을 받도록 하자는 대법원의 발상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못하는 아버지가 그만큼 많기 때문인가.

부모에게 특별교육을 실시한다는데 왜 굳이 아버지만 거론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아내가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교도소로 아내를 보내는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아버지들이라면, 아이가 잘못됐기 때문에 받아야 할 특별교육
이란걸 아내에게 떠넘길 아버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행청소년의 상당수, 아니 절대수가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버지에 대한 특별교육이란걸 실시한다는게 타당한 발상인지,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만약 법원이 실시할 특별교육이라는게 비행청소년대책으로 효과적이라는
보장만 있다면, 그런 교육을 비행청소년이 발생하기 전에 모든 아버지에게
실시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노하우를 가진 법원사람들로 교육부를 재구성하는 것은 어떨지도
따져볼 일이다.

나타난 결과에 대해 항상 책임을 규명할 수 있고, 또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 한 전직 대통령의 법정진술을
전해들으며 내가 느낀 것은 그 위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 영원히 잊지못할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은
차치하더라도 황금같은 젊은 세월을 비탄과 분노로 보내야했던 사람들에게
그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해서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사회현상을 특정인만의 공이거나 그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보는 시각은
대체로 옳지않다.

경제적인 사안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경제가 나빠지면 정부에 대한 원성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경제가 나빠진 원인과 책임을 100% 정부 또는 그 최고책임자에만
돌리는 것을 결코 옳은 자세라고 하기만은 어렵다.

지금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고금리 고임금 저효율을 하나하나
뜯어보더라도 그렇다.

임금을 정부가 나서서 올리라고 한적이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책임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식의 논리는 물론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임금이건 금리건 그 어느 한가지도 정부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권위주의적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상이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국민경제
운용에서 군림해온 정부의 역할과 책임도 달라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성숙된 경제를 위해서는 바로 그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데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들을 하면서도 여전히 정부에 대한 기대를 너무 크게 하고
있는게 문제다.

경제가 잘안된 원인중 상당부분이 정부에 있는 것은 분명하므로 정부 욕을
하는 것은 탓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정부에서 뭔가 대책을 내놔 타개해줄
것으로 믿는다면 큰 일이다.

특히 기업인들이 그래서는 야단이다.

그래서는 우리경제의 앞날이 없다고 단언해도 큰 잘못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 정부에 그럴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부관계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OECD회원국이 될 정도로 경제가
성숙했기 때문에 이제 직접적 지원대책은 통상마찰 등 대외적 문제때문에도
불가능하다"는 식이 된다.

그 원인이 어떻든, 설명이 납득할 수 있든 없든간에 정부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갖는 것은 금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내년 경제를 견뎌 나가려면 그렇다.

정부에 대한 불필요한 기대가 얼마나 큰 비용을 수반하는 것인지는 최근
몇년간의 증권시장상황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정부에서 개입해주면 나아질 것으로 본 단견이 두고두고 문제아닌가.

정부에 대해 바랄 것은 입시생의 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바람, 담배는
베란다에 나가서 피웠으면 좋겠다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TV를 크게 켜는 등 방해만은 말아야 한다는 얘기로 통할 수 있다.

정책의 혼돈으로 새로운 부작용의 불씨나 만들지 말았으면 하는 정도의
바람은 지극히 타당하다.

하기야 그것도, 냉탕으로 가는지 온탕으로 가는지도 불분명한 노동관계법
개정과정 등으로 볼때 꼭 기대해도 좋은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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