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선택한 길을 쉬지않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게을러지는 자신을 다그치며 길을 재촉하는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
거룩한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영화감독 정지우씨.

28세라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

그를 보고 있자면 젊음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느껴진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과 순수함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정감독은 자신의 인생을 영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영화를 위해 공부해 왔고 영화를 만들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나이는 어리지만 대학2학년때부터 감독으로 데뷔, 벌써 9년째다.

발표한 작품도 6편.

지금은 소위 영화판에서 먹고 살고 있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일에 자신의 영화인생을 걸었단다.

정감독의 이런 열정이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15일 끝난 서울단편영화제에서 그는 최우수작품상, 예술공헌상, 젊은
비평가상등 3개부문을 휩쓸었다.

16mm 단편영화 70여편이 출품돼 경합을 벌인 이 대회에서 정감독이 내놓은
"생강"은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최우수작품상에 올랐다.

특히 이작품은 유례없이 예술공헌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동시 수상,
정감독을 영화계의 무서운 신예감독으로 부상시켰다.

임권택감독등 5명의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이구동성으로 그의 작품을
극찬했다.

"생강"에서 보여준 정감독의 독특한 시각과 주제의식, 뛰어난 연출력이
여러작품중에서 크게 돋보였다는 것.특히 임권택감독은 "생강등 일부작품은
프로수준에 이르렀다고 평할 만하다"고 했을 정도.

정감독은 "생강"에서 80년대를 지낸 운동권부부의 생활을 통해 여성의
소외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미혼인 그는 "의식있는"젊은 부부가 먹고 살기 바쁜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 소원해지는 과정을 리얼하게 영상화함으로써 모순의 사회를 고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줄곧 소외라는 주제를 다뤄왔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시절 처음만든 "혼혈아"에서부터 최근의 "생강"까지
그는 일반인들이 삶에 묻혀 잊기쉬운 문제들을 끈질기게 끄집어 냈다.

이제 주위사람들은 그의 영화가 하나의 색깔을 갖게 되었다고 평한다.

그 색은 한국 독립영화를 대표하기도 한다.

그의 94년작품인 "사로"가 이탈리아에서 열린 16mm "몬테카티니영화제"에
공식 초청작으로 뽑힌 것.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 결과일지 모른다.

영화사랑이 그야말로 열정적이기 때문이다.

정감독은 이미 서대문중학교시절부터 취미없는 공부보다는 방송을 선택,
자신의 영화의 길을 준비했다.

수업보다는 방송대본 쓰는 것이 더 좋았다고.

대학시절에도 마찬가지.

학생 감독들이 만든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그는 3년간 숙식을 해결하며
그야말로 영화에 미친(?) 나날을 보냈다.

정감독은 그때 상황을 "행복"이라는 단어로 갈음한다.

강의실보다 영화사에서 보낸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심지어 "재학중 가장 아까웠던게 학점때문에 관심없는 교양과목을
들어야 했던 것"이라고 말할 정도.

이런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이제 힘없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부족할뿐 아니라 관련
장비나 인력이 부족해 표현에 제한을 받는다.

정감독은 그보다는 "연봉 40만원수준의 생활고를 해결할 만한 뾰족한
대책이 더 시급하다"고 털어놓기도.

시종 열정과 순수로 가득한 정감독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최근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세와 뇌물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가 과연 국내
상황일까 하는 의아함이 앞선다.

<박수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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