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이 사촌오빠 집으로 나가 있었다는 것과 그 사촌오빠 마누라가
음탕한 여자였다는 것은 보옥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긴 술주정뱅이 백정인 남편은 이미 성적 기능을 상실하고 마누라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몸으로 전락하였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좌절감으로 남편은 더욱 술에 빠쪘을 것이었다.

"하루는 말이에요.

사촌오빠 마누라가 아예 집으로 남자를 끌어들였어요.

남편이 술에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있는 그 옆에서 외간남자와 벌거벗고
그 짓을 하였지요.

남편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마누라가 남자의 몸을 오르고 남자의 몸에
깔리고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뭐라 그랬는 줄 아세요?

내가 방문 틈으로 엿보았기 때문에 그 장면을 잘 기억하고 있지요"

"뭐라 그랬는데?"

보옥이 호기심이 생겨 급히 물었다.

"글쎄, 마누라의 짓거리를 한참 보고 있더니만 이러는 거예요.

저년 구명은 도대체 몇 개야? 그러자 마누라가 다른 남자의 몸을
타고 앉아 남편에게 이렇게 맞대답을 하는 거예요.

그래 내 구멍은 열개다.

근데 너는 한 구멍이라도 채워준적이 있어?이 병신 머저리 고자야"

"지독한 계집이군. 백정인 남편이 소 잡는 칼로 각을 뜨는 시원치
않을 계집이야.

그런 사촌오빠와 마누라 밑에 있으려니 청문이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겠어"

보옥이 혀를 차며 그런 계집들이 들어가 고통당하는 지옥은 무슨
지옥일까 생각해보았다.

그지옥은 그 어느 지옥보다 불길이 더 뜨겁고 맹렬할 것이었다.

그때였다.

주변이 훤해지면서 물러가 있던 불길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청문은 황극히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보옥도 어디 피할 데가 없나 하고 둘러보았다.

그러자 귀졸이 빙긋이 웃었다.

"지옥을 구경하려고 온 사람은 피할 필요가 없어. 불길이 그냥
지나가거든.

불길이 살이나 옷에 닿는다 하더라도 뜨겁거나 타지가 않아"

아니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시뻔건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며 지옥을
훌 을 때마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였으나, 보옥과 귀졸은
마치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불길 속에서도 털하나 타지 않았다.

청문은 바위 뒤에 숨었다고는 하나 불길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불길로 뻘겋게 달아오른 바위가 오히려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보옥은 머리를 미친 듯이 저어대며 괴로워하는 청문을 보고 한탄하였다.

원통한 마을 불길 같아서 영겁의 세월을 두고 저리도 몸과 마음을
태우는구나.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