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잠든 보옥을 다시 침상으로 옮기고 대부인과 왕부인, 습인만
신방에 남아 보옥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희봉은 별채 안방으로 돌아와 보채 곁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아침이
밝아올 무렵 문밖에서 기척이 났다.

희봉이 밖으로 나가보니 이환이 눈물에 젖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에요?"

희봉이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대관원 쪽으로 흘끗 눈길을 주었다.

"대옥 아씨가 저 세상으로..."

이환이 울먹이는 낮은 소리로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하필 이 경사스러운 날에 세상을 뜨다니"

희봉은 하도 기가 막혀 한숨조차 내쉬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지금 보옥의 신방에 있는 대부인과 왕부인에게 대옥의
죽음을 전한다면 두 분 다 졸도하시겠구나 싶어 한나절쯤 지난 후에
부고를 알리기로 하였다.

희봉은 이환에게 신방 쪽에는 대옥의 죽음을 전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는 소상관으로 달려갔다.

희봉은 자기가 도모한 보옥과 보채의 혼인의 결과가 우려했던 대로
보옥의 정신병 재발과 대옥의 죽음으로 나타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대옥이 몸이 약하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마음마저 이리도
약했단 말인가.

그리고 옥의 인연을 치유해준다던 금의 인연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소상관에 이른 희봉은 대옥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통곡하였다.

"아이구, 아이구, 내 탓이로다. 다 내 탓이로다"

그러나 옆에서 울고 있던 자견은 희봉이 은근히 대옥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한편 바로 그 무렵, 안식향에 취해 잠이 든 보옥은 한순간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으며 저승사자의 인도를 받아 저승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묵묵히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옥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그들을 덮고 있는 정밀은 죽음에 대한 항의나 반역의 포기를 뜻하고
있는 셈이었다.

완벽한 죽음의 권력이 거기서 자행되고 있었다.

보옥은 자기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저승이 아직도 멀었습니까?"

"이 사람아, 바로 여기가 저승이야. 우리는 저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길이야"

"저승에서 저승으로요?"

"그렇다니까. 그런데 가만있자, 자네는 아직 여기 올 때가 아닌것 같은데"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