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싱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페라리가 연상되듯이 랠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단연 란치아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세계랠리선수권(WRC)에서 1974년부터 3년간 연속 우승한 것을
비롯하여 1987년부터는 6년 연속 챔피언십을 따낸 결과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랠리에서의 란치아 명성을 있게한 차가 바로 1972년에 발표된
스트라토스이다.

스트라토스의 역사는 1970년 토리노 모터쇼에서부터 시작된다.

1970년 토리노 모터쇼에 베르토네 스튜디오의 컨셉트카인 스트라토스가
소개되었는데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람보르기니의 미우라와 카운타크를 디자인한 마르첼로 간디니의
작품으로서 미래지향적인 2인승 쿠페타입이었다.

앞쪽이 뾰쪽하면서 낮고 뒤로 가면서 두터워지는 웨지 스타일의 보디
타입을 가지면서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전투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전투기의 캐빈을 들어올리듯이 차체 지붕을 뒤로 젖히고 운전자가
타는 모습은 자동차 제작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스트라토스라는 이름도 대류권 위를 나는 초음속 전투기를
연상하듯 "성층권"이라는 영어 이름의 앞부분을 따온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공격적인 스타일은 당시 란치아의 레이싱팀을 이끌고 있던
"피오리오"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에 의해 전문 랠리카로 모습을 바꾸게
되었다.

도어는 실용적으로 전통적인 2도어로 바뀌었고 뒤쪽으로 가면서
두터워지는 보디 스타일로 인해 승객 바로 뒷부분에 V6 2.4리터의 페라리
엔진을 탑재하였다.

1969년부터 란치아는 피아트 그룹에 속하게 되었고 당시 페라리도
재정적으로 피아트 그룹의 지원을 받게 됨으로써 페라리 엔진을 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로니컬하게도 란치아의 명성을 있게 해준 대표적인 차가
페라리의 엔진과 베르토네의 디자인, 그리고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링
기술에 의해 제작되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스트라토스는 최고시속 225km의 고성능 랠리 전용카로 개발되어
연간생산 200대 이상의 프로토타입 랠리인 B그룹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스트라토스의 명성은 랠리의 우승에만 있은 것은 아니었다.

2,184mm의 좁은 휠베이스(축간거리)와 중앙에 탑재된 엔진에 의한 적당한
무게 배분에서 나오는 지면 접지력은 코너링시 지면에 자석같이 달라붙는
듯한 자유자재의 핸들링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200km대의 고속에서도 랠리 전용카 답지않게 조용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더욱이 프로토타입의 수작업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실용적인 면에서도
배려를 하여 도어에는 헬밋이 들어갈 정도의 다용도 박스를 갖추고 있었다.

스트라토스는 그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 가면서 피아트와 함께
아우디 콰트로의 4WD가 나올 때까지 랠리를 이끌게 되었다.

김상권 < 현대자 승용제품개발 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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