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패왕 항우는 그 "역발산기개세"에도 불구하고 심리전에 말려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사면초가의 고사는 그의 서글픈 패전사다.

유방과 천하 패권을 다투다 수세에 몰려 고향으로 돌아가던 항우는
한신이 지휘하는 한군에 포위당했다.

군사는 얼마남지 않았고 군량미도 다 떨어져 있었다.

밤이 되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슬픈 소리.

고향 초나라의 노래였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향노래에 초나라 군사들은 향수에 젖어 전의를
잃고 말았다.

투항을 하기도 하고 멀리 도망가는 이도 있었다.

소수의 군사를 이끌고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단신으로 대군을 맞아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만다.

사면초가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전쟁에서의 심리전은 적의 심리상태를 이용하는 전략이다.

적으로 하여금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 전의를 상실케 하는 게 주목적이다.

아무리 좋은 무기와 좋은 전술이 있어도 이를 활용하는 군사들의 의욕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사면초가의 고사를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어떤 조직이건 전체에 흐르는 공통된 감정의 조율이 조직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다.

항우의 패배에는 심약해진 군사들 전체에 만연된 패배의식이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를 간파한 게 한나라의 장량이었던 것이다.

요즘 기업들은 대경쟁 시대를 대비한 체질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조직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진 못하고 있는 듯하다.

경기불황으로 위기감이 팽배하면서 탄식과 체념의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별 도리가 없다"는 식이다.

"이럴 땐 가만 있는 게 상책"이라는 복지부동이 유행처럼 퍼져가고 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스려 일어서겠다는 도전의식은 점차 사라지고
자포자기 하는 패배의식이 만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제사회는 단선적이고 자국 중심적인 국가와 기업의 이익추구를
허용치 않는다.

경쟁력있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는 것이다.

이처럼 냉혹해지는 기업의 현실에서 조직내에 체념적 감정이 지배해서는
곤란하다.

무사안일주의가 판을 쳐서는 안된다.

기업내에 깔려있는 공통 정서를 진단해보고 경쟁에 맞는 정신의 재무장이
필요한 때다.

조직내에 항우의 군사들을 도망치게 했던 패배의식은 없는지, 어떤
"심리전"에도 동요되지 않을 기업의 정신적 받침목은 무엇인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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