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 비준동의안의 국회처리가 시끄러울 전망이다.

가입자격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정부와 이를 뒷받침하는 여당은 오는 20일
국회본회에서 동의안을 신속하게 비준시키겠다는 계획인 반면 야당은 아직
시기상조이므로 조기가입은 반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동의안 신속처리"와 "조기가입 반대"라는 상반된 주장을 내걸고 한달여
동안 설전과 신경전을 벌여온 양측의 표면적 이유는 가입자격이 있느냐의
여부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정치적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협상 게임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즉 야당은 여당이 20일 김영삼대통령의 APEC정상회담 참석을 앞두고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아래, 현재
여야가 구성한 제도새선특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검찰과 경찰의 중립법,
선거법, 국회법 등의 협상에 유리한 정치게임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OECD가입에 따른 여러가지 정책적
보완이다.

즉 OECD가입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우리나라가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를 곰곰히 따져보는 일이다.

자격도 단순히 OECD회원국 가입이라는 입학자격 보다는 선진국으로 진정한
행세를 할 수 있는 "졸업자격"을 뜻한다.

물론 여기서 졸업은 끝낸다는 뜻의 졸업이기보다는 시작이라는 뜻이 담긴
영어의 Commencement라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시스템상으로는 기술경쟁력을 축으로 하는 고부가가치의
선진국형 산업구조 등을 갖추어야 할 것이며 경제운영방식에 있어서는 상호
불신과 정경유착의 천민자본주의를 탈피, 공동체정신에 입각한 상호협조적인
시스템으로 탈바꿈되어야 하는 것이다.

선진국으로서의 자격은 경제주체의 3대축인 정부-정치권, 기업, 소비자-
노동자로서의 국민 등이 모두 선진국수준에 이르렀느냐에 달려있다.

OECD에 가입하는 것은 경제분야에 있어서 국제적 차원의 협력을
도모하자는 것인데, 국내차원에서 경제주체간의 상호협력조차 못한다면
천민자본주의 체제를 졸업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선진경제체제로의
졸업(Commencement)도 불가능한 것이다.

협력은 상호신뢰도가 있어야 가능하다.

"후쿠이시라"가 최근저서인 "트러스트(Trust)에서 주장한 것처럼 한
나라의 경제적 승패는 신뢰도와 상호협력의 연대감에 얼마나 가치를
두느냐에 달려있다.

이러한 사실은 컴퓨터 게임에 의한 주제토너먼트결과로도 입증된 적이
있다.

이 토너먼트에서는 2개의 컴퓨터프로그램이 오직 "배반"또는 "협력"중
양자택일해 승부를 겨루어,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더
많이 얻어내는 프로그램이 점수를 더 많이 받는 시합이었다.

두차례에 걸친 국제시합에서 우승의 영예는 모두 토론토대학의 라포포트
교수가 만든 팃포탯(Tit for Tat) 프로그램이 차지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협력하라, 그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바로 전에
행동한대로 따라서 하라"는 간단한 2개의 규칙으로 되어 있다.

2차시합에서는 팃포탯의 전략이 노출된 상태였음에도 다시 우승함에 따라
죄수들의 딜레마를 협력여부에 따라 Win-Win(승승), Lose-Lose(패매), 또는
win-lose(승패)가 갈라지는 게임의 경우 이 전략이 가장 우수한 전략임이
입증됐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경제국이 되는 길은 고비용구조를 깨고 고부가가치 산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고비용구조중 가장 중요한 비중을 갖는 고임금, 좀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우리 경쟁국가의 생산성이나 부가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관계법의 연내 개정이 노사협력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경우 이기적 이타주의에 입각한 팃포탯전략의 기본정신이 최대한
반영되는 것이 제로섬(zero-sum)게임이 아닌 win-win게임의 지름길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87년에서 95년까지 임금상승률은 16.1%로 노동
생산성 증가 11.1%보다 5%를 앞지르고 있으며, 이 기간중 경쟁국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3공화국 유신정권 및 5공화국에서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노동환경이 6공정부에서 노동자들의 분노를
폭발적으로 분출시킴으로써 비롯된 것이었다.

즉 5공때까지는 노동자가 기업과 정부를 협력자보다는 배반자로 6공이후는
기업과 정부가 노동자를 배반자로 여겨 상호신뢰와 협력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다가오는 21세기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노동관계법을
선진국 규범으로 바꾸고 의식개혁을 통해 노동착취의 저부가가치기업이
도태될뿐 아니라 기업경쟁력 착취의 투쟁일변도의 노동귀족도 도태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다시 말해서 경영층은 노사자치주의를 확립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공동체적
입장에서 보호해주되 노동자측은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생산성향상과 노동
시장의 유연화에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 권익보호는 동태적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높은 임금으로 단기적인 노동자 권익은 보호될 수 있으나, 그러나
실업률이 15%내외인 유럽시스템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경쟁력있는
임금으로 높은 고용효과를 거둬 5%대의 실업율을 유지하는 미국시스템을
선택할 것인가를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결정은 천민자본주의적인 이기주의에 기초한 정치적 논리가
배제되고 장기적 관점의 이기적 이타주의에 입각한 경제논리가 정책결정의
기본이 될때 자명해진다.

이러한 선진국자격은 소신있게 일관성있는 권력을 추진하는 정부와 이를
이끌어주는 용기있는 정치인이 있어야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대처수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
논리의 정책을 펴는 정당이 더 많은 정치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국민의 수준이 높아졌음을 여야는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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