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캘리포니아주 산호제이시를 중심으로 반경 30마일 지역에는 뉴테크놀로지
업체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실리콘밸리".

그러나 "실리콘밸리"는 이미 지리학적인 이름이 아니다.

세계 첨단산업의 메카를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된지 오래다.

21세기를 이끌어갈 전세계 미래산업의 파이오니어들이 몰려드는 실리콘밸리
에서도 "창조의 혼"을 불태우는 한국인이 있다.

매킨토시 호환기종 PC(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실리콘밸리의 킹"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파워컴퓨팅사 강신학 사장(45.미국명 스티브 강)이 그 주인공
이다.

94년도 다 저물어가던 어느 날.

창사이래 제품을 전량 자체생산 판매해오던 애플컴퓨터사는 돌연 파워컴퓨팅
사를 애플사 주력기종인 매킨토시컴퓨터의 호환기종 생산판매업자로 지정했다
고 발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애플이 선정한 파워컴퓨팅사가 세워진지 1년도 않된
소규모 업체라는 사실.

그 설립자인 무명의 한국인 스티브 강은 일약 실리콘밸리의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애플사의 운명의 열쇠를 거머쥔 스티브 강" (월스트리트저널)

"애플컴퓨터의 미래는 그의 손에 달렸다" (USA투데이)

95년 새해 벽두부터 각종 신문 잡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이 말들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애플사는 IBM과 달리 일체의 호환기종 생산판매를 허용하지 않는 정책을
펴왔지만 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서 시장점유율 확대에 한계를
느껴왔던 것.

결국 애플은 파워컴퓨팅사의 저가 호환기종 생산판매를 통해 막힌 매킨토시
의 판매의 숨통을 터보려는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애플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오며 매킨토시에 채택된 기술의 우수성을
익히 알고 있던 강사장은 이의 호환기종 개발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애플사가 언젠가는 기술을 개방할 것이라고 믿고 호환기종 생산판매
업체로 지정받기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켜 나갔던 것이다.

94년 9월 애플사가 운영시스템 등 기본구조기술을 개방함에 따라 개발작업을
본격화했다.

그는 얼마뒤 애플로부터 매킨토시 호환기종 개발 라이센스를 획득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같은 호환기종 개발과정에서 파워컴퓨팅사의 기술력을 잘 아는 이태리
전자업계의 거인 올리베티사 일본의 ASC 등 세계 유수의 컴퓨터업체들로부터
지원을 받을수 있었다.

매킨토시 호환기종 생산업체로 지정된후 강사장은 "매킨토시 호환기종 개발
에 뛰어들 당시만 하더라도 애플사로부터 어떤 확약도 받지 않은 상태여서
위험성이 꽤 높았다"고 밝히고 "그같은 위험성을 상쇄할만한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쁠 따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같은 털털한 인상의 강사장은 49년 서울서 태어나 67년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곧장 도미 공학의 명문 미시건 대학과 대학원에서
컴퓨터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미시건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IBM 뉴욕사무실에서 6년간 근무하다 83년
실리콘밸리로 이주, 컨설팅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모 전자회사로부터 IBM 호환기종 PC 디자인을 수주받아
기존 IBM 제품의 절반에 불과한 가격대의 PC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제품은 한때 미국내 시장점유율 3위를 기록할 정도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그러나 강사장은 계약상의 문제로 단지 20만달러에 불과한 수입만 올리고
손을 떼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강사장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랄 일을 꾸몄다.

93년 친구인 올리베티사 부사장 피욜의 도움으로 드디어 매킨토시 호환기종
을 개발한 것이다.

"맥 7100" "맥 8100" 등 그가 내놓은 모델들은 미국 PC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기술라이센싱을 제공하기 거부했고 결국 강사장은 상품화에
실패, 두번째의 좌절을 맛봐야 했다.

이러한 두번의 아픔에 강사장은 굴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의 탑클래스 컴퓨터시스템 디자인및 PC마케팅 전문가 강사장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해서 93년 11월 파워컴퓨팅사를 세우고 오늘의 성공을
준비했다.

그동안 축적한 컴퓨터 디자인과 마케팅 경험을 밑천으로 워크스테이션
개발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강사장은 파워컴퓨팅사가 애플사의 호환기종 라이선스를 획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으로 뛰어난 엔지니어링기술, PC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
으로 수립한 치밀한 판매전략, 대기업과의 원만한 관계유지 등을 꼽았다.

호환기종 라이선스 획득을 위해 덤벼들었던 당시 내노라하던 기업들을
"애송이" 파워컴퓨팅이 제칠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내실이 이같이 탄탄한
때문이었다.

파워컴퓨팅이 첫 테잎을 끊은 이후 뒤따라 래디어스 파이오니아 데이스타
등 PC업체들도 라이선스를 획득 시장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파워컴퓨팅사는 최초의 라이선스업체라는 고객의 신뢰 등에 힘입어
95년 매출액이 이들 3개 회사의 매출 합계를 능가하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인 시판에 들어간 파워컴퓨팅의 매킨토시 호환기종은
현재 8종류의 모델이 나와 있다.

이들은 우수한 성능에 오리지널 매킨토시에 비해 10~20% 정도 가격이 낮아
날개 돋친듯 팔리고 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매킨토시가 아니라 IBM PC입니다"

강사장은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7개월동안 무려 5만여대의 호환기종을
팔았으며 올해에는 판매량이 2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기종들은 각종 컴퓨터 잡지로부터 품질우수상을 수차례 수상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거의 미국내 판매에만 머물렀으나 내년부터는 해외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라고.

한국을 비롯 유럽 일본 등에서 대리점 계약을 희망하는 업체들이 강사장과의
면담을 위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8일에는 한국에서 유공해운이 이 기종 도입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파워컴퓨팅사는 향후 4~5년내에 자본금 10억달러의 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인
매킨토시 호환기종 PC를 생산 판매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현재 에이레 더블린에 공장 건설을 추진중이다.

강사장은 매킨토시 호환기종 라이선스를 획득한 이후부터 텍사스주 오스틴시
에 생산및 마케팅본부를 차린뒤 아예 그곳에 집을 장만해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다.

어쩌다 한번씩 연구개발본부격인 실리콘밸리의 사무실을 들를 정도다.

업무량이 폭주하다보니 여가시간을 가지기도 힘든 형편이다.

그는 항상 바쁘다.

직원들이 회사내에 있는 그를 찾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이곳저곳 다니며 분주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쉴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간혹 시간이 나면 집에서 독서를
하거나 눈을 감고 조용한 음악을 듣는게 요즘의 유일한 여가책이다.

요즘들어 강사장의 가장 큰 소망은 "언제고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외동아들을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 여가다운
여가를 가지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강사장은 비교적 운이 좋은 사업가다.

다소의 어려움은 있었으나 아직 큰 역경에 처한 적은 없었던 것.

남들에 비해 순탄한 길을 걸어온 셈이지만 그것을 운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의 뛰어난 능력과 함께 근검절약하는 성실한 생활태도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것이다.

그는 요즘도 점심은 주로 맥도널드 햄버거로 때우며 12년된 중고 벤츠승용차
를 몰고 다닌다.

출장을 갈때 항공료를 아끼기 위해 기꺼이 수백마일을 돌아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강사장은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후배 사업가들을 위해서 "사업이란
결코 머리만으로 되는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머리뿐만 아니라 돈과 사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그는 "사업을 시작하기전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일단 사업에 돌입했으면
성공을 일궈내는 사업조건들을 차근차근 맞춰 나가야 한다"는 사업지론을
펼친다.

그는 또 "사업의 성공요건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원만한 관계와 팀워크 유지
가 우선이다"고 말한다.

얼마전 그는 뉴스위크지가 뽑은 "21세기를 이끌어갈 50대 인물"중의 한사람
으로 꼽힌 적이 있다.

하루 14시간 일하는 일벌레이자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집념의 사나이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킹이라는 별명의 소유자 강신학씨는 세계 컴퓨터사에
커다란 발자욱을 찍어가는 자랑스런 한국인임에 틀림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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