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의 몸에서는 마치 혼이 빠져 나오듯 식은땀이 계속 비어져 나왔다.

견습시녀로부터 전갈을 받고 도향촌에서 달려온 이환이 자견을 비롯한
시녀들과 함께 대옥의 옷을 벗기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대옥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주었다.

앙상하게 피골이 상접한 대옥의 모습은 안쓰럽개 그지없었다.

이환과 시녀들은 이제 수의를 입혀주기 위해 대옥의 몸을 반쯤 안아
일으켜 우선 머리부터 빗겨주었다.

축 늘어져 있던 대옥이 수의를 입혀나가자 스르르 다시 눈을 떴다.

대옥은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멀건히 시녀들의 손놀림과 하얀 수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옥은 지금 자기가 수의에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 마음이 어떠할 것인가.

자견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정성껏 수의의
옷깃을 여미며 수의를 입혀나갔다.

"자,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도록 해서 아씨를 뉘라"

이환의 지시를 따라 시녀들이 대옥의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하며
천천히 대옥을 뉘었다.

대옥은 반듯이 누운 후에도 여전히 두 눈을 뜨고 있었는데,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여 눈에 초점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유언을 남기려는가 보다.

자견아, 어서 붓과 종이를 가지고 오너라"

상례에 따라 자견이 유언을 받아 적기 위해 필기구들을 가지고 왔다.

사람들은 대옥의 주위에 둘러서서 대옥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자견은 우선 조금 전에 대옥이 자기에게 남긴 유언, 즉 유해를 고향
땅 소주로 운구하여 아버지 곁에 묻어 달라는 그 말을 종이에 적어두었다.

대옥은 빠져나가는 기력을 모으려는지 두 주먹을 꽉 쥐었으나 곧
힘없이 펴지며 두 손이 아래로 쳐졌다.

그 순간, 두 눈에 불꽃이 이는 듯하더니 대옥의 입에서 외미디 같은
소리가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보옥 오빠, 보옥 오빠, 어쩌면 그럴 수가!"

그러더니 대옥이 고개를 푹 꺾으며 숨을 거두었다.

그 부르짖음에는 대옥의 모든 고통이 담겨있는 셈이었다.

자견은 그 말을 그대로 차마 유언장에 적어넣을 수가 없어, "보옥 오빠,
보옥 오빠" 두 구절만 적어두었다.

이환이 깨끗한 솜 한 조각을 대옥의 입과 코에 대어보고 호흡이
멈추었음을 확인하였다.

이환이 무릎을 꿇으며 곡을 하자 그와 동시에 시녀들의 통곡이 터져
나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