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제대로 지켜져야 질서가 생겨난다.

알기 쉬워야 하고 납득이 가야 하며 믿을만한 법이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법령 투명성제고 사업은 법집행을 선진화하여 민원과
비리 등 사회적비용을 줄임은 물론 법치주의를 확립하는데 초석이 된다.

따라서 법을 지켜야할 민간의 투명성제고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8일 전경련은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에 "경제법령 투명성제고 과제"를
제출했다.

이 건의서는 회원사들의 실태조사를 통해 얻어진 125건의 불투명한 법령을
규제완화의 틀에 맞게 "원칙 자유, 예외 금지"의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바꾸어 새로운 시장형성과 창의적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규제개혁을 요구했다.

또한 지난 7월 경제행정규제개혁 실무위원회가 "경제행정의 투명성제고"를
첫째 규제근거를 신설하고, 둘째 규제기준을 상위법령화하며, 셋째 규제용어
를 구체화하는 등 규제강화의 기회로 활용하려 했던 점을 경계하고 있다.

경제법령 정비사업의 근본목표는 시장경제운용의 기초가 되는 행동규칙,
즉 헌법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어야 한다.

투명성 제고사업이 관료측에서는 규제의 칼을 날카롭게 하고, 기업측에서는
기업의 책임을 공공의 부담으로 떠넘기는 정치 게임이 되어서는 안된다.

세계화 시대, 정보기술혁명 시대에는 국가경쟁력의 실체는 개인의 능력이며
기업의 경쟁력이다.

개방된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제질서가 시장경제에서의
개인의 선택, 재산권행사, 계약과 교환을 폭넓은 헌법적 자유로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법령 정비사업은 우리의 현행 법체계를 시장원리나 법리원칙에
부합하게 고치는 규칙질서 개혁프로그램으로 차원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법령정비의 내용을 행정집행의 일관성 신뢰성 예측
가능성과 같은 절차뿐아니라 행정서비스의 고객만족 가치성 기민성과 같은
효과성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합병조건과 시기결정에
증권감독원이 투자자보호를 이유로 행정지도를 하는 것은 하위규정을 만들어
기업활동을 간섭하고 증시상황을 조정하는 정부개입 행태이다.

법적 근거가 없는 기업활동규제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수 없다.

둘째 헌법에서 보장된 선택의 자유, 평등의 원칙, 재산권보장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령위임없이 하위법령에서 제약되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

즉 규제행정은 법개정을 통해 근거를 만들기 보다는 상위법의 법리해석에
배치되지 않는 한 폐지돼야 한다.

예를들어 보건복지부 고시에 의해 의료보험약가 심사위원회가 설치 운영되고
있으나 전문성이 결여되어 심사의 효율성이 없다.

오히려 전문기관의 자문이나 사전심의가 더 효과적일수 있다.

셋째 새로운 시대상황에 부합되지 않는 규칙의 효력을 먼저 정지시켜야
한다.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고 계약의 준수가 사회적 규범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저개발시대에 만들어진 행정개입에 의한 보호제도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달라지면 법도 새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