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경제는 구조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물가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국제수지의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으며 성장률 또한 연초의 예상치를 밑돌고 있다.

이같은 어려움은 적어도 97년 2.4분기,심지어 98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불황의 터널이 생각보다 길 것인지, 또는 짧을 것인지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정부에서는 이미"9.3 경기 종합대책"에 이어 "경쟁력 10%이상 높이기
운동"을 통해 경제활력 되살리기에 나섰다.

기업은 기업대로 생산성제고와 감량 경영체제로 돌입했다.

건전한 소비의식의 정착과 근검절약의 풍토가 근로자와 국민들 사이에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위기국면으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경제주체가 다같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이뤄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주체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성장을 지속해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가 제 갈길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80년의 대격동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우리는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겅험했다.

정치의 혼란과 사회의 불안 등 외부 요인이 경제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에
나타난 당연한 결과였었다.

경제의 성장과 발전은 어디까지나 기업활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회가 안정되면 기업 의욕은 저절로 살아나고 기업가 정신은 그만큼
도전적이며 창조적으로 바뀐다.

그러나 사회가 불안하고 체제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기업활동이
위축되게 마련이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곳에 투자는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바로 지척에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고 항상 우리를 넘보는
북한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또 이들이 수시로 우리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파괴하려고 획책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한 채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는 두가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하나는 경제위기요, 다른 하나는 체제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는 모두가 현실로 느끼고 있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중이다.

위기를 위기로 느낄때 그것은 이미 위기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체제가 위험수위에 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같은 위기감의 상실이야말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이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이미 우리의 체제가 북의 그것에
비해 우열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탈북자 귀순자의 행렬은 남북간 체제경쟁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패배한 체제를 동경하거나 이를 찬양하는 세력이 여기 저기에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혹한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으면서,또 오랫동안 고통을 맛보면서
공산주의의 실체를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된 우리가 지금까지도 체제논쟁이나
이념투쟁과 같은 시행착오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학생운동은 아무리 탈법적 폭력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학생에 의한
행동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나치리 만큼 관용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형태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갈지 모르는
북한에 대해 언제까지나 민족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지원을 베풀어야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체제 내부의 불순세력,지근 거리에 있는 적대집단의 존재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같은 위기 불증감이다.

무장공비에 의한 양민학살을 생생히 지켜보면서도 이번 사건이 정부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 확대됐다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유포될 수 있는 것이
이땅의 풍토이자 우리의 안보수준이다.

사회의 안정과 체제의 유지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이를 지켜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질 때,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한 적정한 방안을 확보하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통해서 우리에게 안보의 중요성이 절실히 인식된
만큼 조만간 우리의 체제유지와 경제안정을 위협하는 좌경세력을 발본색원할
수 있도록 안기부등 정부 관계기관의 기능강화에 필요한 법령보완 등이
적극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제 OECD에 가입하게 된 만큼 국제 경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커졌다.

우리가 지난 30년간 피땀흘려 이루어 놓은 것을 하루아침에 잃지 않기
위해서는 느슨해진 우리의 위기의식을 다시한번 일깨워야 한다.

기업이 살고, 경제가 살고, 국가가 살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와 체제의
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안정이라는 조건이 충족됐을 경우 경제는 그 잠재력만큼 성장하게 돼야
한다.

이를 소홀히 했을 경우 우리가 얻는 것은 혼란과 무질서뿐이요, 잃는 것은
경제의 선진화라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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