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은 보옥의 신방 건넌방에서 가련과 혼인을 하고 살아온 날들을
떠올리며, 우이저와 추동의 틈바구니에서 시기심에 불타 결국 우이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들에 대한 회한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우이저는 음탕한 계집이긴 하였으나 마음은 물러터질 정도로 여리고
착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 돌아보니 우이저가 그런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지,
그 당시는 투기로 눈이 멀어 우이저를 어찌해서든지 빨리 죽여 없애야
하는 요괴처럼 여겼던 것이었다.

시기, 질투는 곧 살기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희봉은 한때는 마음속에 들끓는 시기심이 다른 대상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그 병을 치료하는 요투탕
같은 것은 없나 문의해보았으나 그런 약은 있을리 없었다.

투기라는 것은 시기하는 본인이 죽든지 시기의 대상이 죽든지 해야
겨우 결판이 나는 무서운 병인 셈이었다.

한편, 대옥은 보옥이 혼인식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실낱 같은 숨이 언제 꺼질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었다.

대옥의 이마에서는 연방 땀이 배어나오고 고통이 극에 달하는지
이맛살은 찌푸려질대로 찌푸려졌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대옥의 표정이 평온해지면서 한나절 내내 감고
있던 두 눈을 스르르 떴다.

두 눈은 오랜만에 평상시의 총기가 돌아와 어여쁘기 그지없었다.

"나, 좀 먹고 싶다"

대옥이 희미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견이 계원탕에 배즙을 타서 한 종지 들고와 대옥의 입에다 작은
은숟가락으로 몇 모금 떠넣었다.

대옥은 그 맛을 음미하려는 듯 입안에서 혀를 두어 번 굴려보고는 다시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대옥의 침상을 지키는 자견을 비롯한 시녀들과 이환은 대옥의 모습에서
임종 직전의 평온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평온이 꽤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환은 잠시 도향촌으로
가서 집안 일을 돌보았다.

얼마 후 대옥이 다시 눈을 떴는데 이번에는 눈에 총기가 빠져 있었다.

대옥이 침상 주위에 있는 시녀들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시선이 자견에게로
와 멈췄다.

자견이 대옥의 침상으로 무릎을 꿇은 채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자견아, 나는 아무래도 틀린 것 같구나.

그동안 병약한 나를 간호하고 시중드느라고 자견이 너무 고생만
했구나.

내가 잘 되어야 자견이도 잘 될텐데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니 자견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하기 그지없구나"

"아씨, 그런 말씀 마셔요"

자견이 침상 모서리를 두 손으로 꽉 붙잡고 흐느껴 울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