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세월을 더듬어 가며 친목회, 동창회, 종친회, 상조회 등등의 많은
단체와 모임속에서 어우러지지만 저마다의 형성과정이 모이는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대개의 경우 직장이라는 집단은 자율반, 타율반으로 영글어 있는 개체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요즈음처럼 명랑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기일수록 서로가 부대끼며
경쟁하다보니 그장을 잠시떠나 모두가 해맑은 웃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동호회 활동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하루에 열 서너시간씩을 직장에 투자하며 인생의 반 이상을 직장이라는
굴레 안에서 쳇바퀴 돌다보면 고교, 대학, 선후배, 심지어는 고향의
어릴적 친구마저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욱 직장에서의 모임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일게다.

이렇게 만든 모임이 "클럽 러브"이다.

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연극영화 동호회쯤 될까.

지난 90년 12월 처음 발기인은 20여명이었다.

회사 업무가 끝난 오후 느지막히 시내 극장 앞에 모이기로 했다.

가족들 (미혼 사원은 예비가족) 티켓까지 예매해서 미리 집행부에서
엄선한 영화를 관람하고 영화가 끝나면 으레 자장면이나 도너츠 등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곤 하였다.

이렇듯 한달에 한 번을 남의 인생 훔쳐보기를 하며 너나 할것없이
가족과 함께 시내 중식짐에서 자장면 먹기를 하다보니 다른 회사로
전직한 선배 사원과 동기들의 가족간에도 우의가 더욱 돈독해짐을 느끼고
지금은 아내가 먼저 신문에 난 영화평을 스크랩하고 있다.

한때 클럽 러브는 그 회원수가 80명에까지 이르렀다.

말이 80명이지 그 가족회원까지 합하면 족히 150여 명이 넘는 숫자였다.

게다가 협력사, 관계사 임직원을 초청할 때면 한 부대가 몰려다니는 것
같았다.

준비위원들은 항상 예매한 표가 모자라 쩔쩔맸다.

새파란 후배 사원이 약호나라고 소개하며 손을 내미는데야 결국은
암표라도 사주어야만 했다.

한번은 시간이 지나서도 나타나지 않는 상사의 가족표를 되팔았다가
맞아 죽을뻔(?)했던 난처한 일도 있었다.

가끔 지극히 선정적이거나 노골적인 장면이 나올때는 주위에서 같이
관람하던 얼힌 사원들을 의식해서 캄캄한 극장안에서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아무튼 당시에는 회사의 동호회로 최고 였다.

지금은 정회원 수가 78명, 주요회원으로는 백건표 OS사업부이사,
류광욱 SI사업부부장, 박영호 CIM팀차장, 김종인 그룹정보교육센터차장,
오창민 VAN팀차장 등이 활동하고 있다.

가족회원인 준회원까지 합치다보면 100여명이 된다.

정말 열성적인 회원은 정회원보다는 준회원이다.

그것도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우리의 사모님들이다.

늦가을 쌀쌀한 바람이 부는 이런 때면 더욱 학창시절이 덕수궁과
졸로의 시네마타운이 그리워진다.

아직은 좋은 시절에 인생의 한페이지를 같이하는 직장동료와 그리고
내 팔을 꼭 붙잡고 있는 아내와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얼어붙은 가슴을
훈훈하게 녹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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