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선 < 한국경제연 연구위원 >

정부는 1993년 12월에 발표하였던 제4차 민영화 계획이 3년이 지난
현재까지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자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작업을 사실상
중단하고 현 상황에서 경영을 합리화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공기업의
경영 효율화 및 민영화 방안"(이하 "경영효율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경영 효율화방안의 주요 내용은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 등 대규모 정부
투자기관들은 민영화를 보류하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며 정부 지분이 50%
이상일지라도 정부투자기관관리 기본법 적용의 예외로 하여 자율성을
높임으로써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정교과서 등 8개 중소규모 공기업들에 대해서는 중견 또는 중소
기업들에 매각하므로써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는 것도 중요한 내용의
하나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공기업 경영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정부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데 전문 경영자 선임 절차의 투명성 보장, 전문 경영자에 대한
보상의 방법, 견제 및 감시장치로서의 사외이사제와 외부 감사인 제도
도입, 소수 주주의 경영전제 장치로서의 대표소송 제도 요건 완화 및
주주창안제도 도입,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1인당 소유지분 한도의 책정
등에 관한 규정들을 담으려 하고 있다.

이와같은 정부의 경영 효율화 방안은 다음과 같은 네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방안은 제4차 민영화계획의 목표였던 경제적 효율성 제고를
정치적인 목적때문에 포기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입담배 농가의 보호를 위해서 담배인삼공사의
민영화를 미룬다든지, 가스공사의 민영화는 가스관의 전국적인 망이 완성된
후에 고려하겠다든지, 한국통신에 대한 민영화는 주식을 매각하지만 정부가
대주주로 남아있겠다는데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은 경영 효율화 방안이 공기업을 둘러싼 이익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 공무원, 그리고 공기업 경영진과 노동자들, 입담배
농가를 비롯한 생산요소의 공급자들의 이해관계의 조정을 의미할 뿐 진정한
공기업의 효율성 제고 수단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익집단들의 정치적 압력을 근거로 무산된 민영화는
앞으로 우리 경제에 공적 부문의 비효율성과 아울러 공기업들의 생산물을
생산요소로 사용하는 모든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표면화되고 손해는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둘째, 이 방안에서는 공기업 비효율성의 원인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퇴보하고 있다.

공기업 비효율성의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소유+독점+규제" 형태의
공기업 소유.지배 구조와 정책결정자.공무원.공기업 종사자.원천적인
소유자인 일반 국민들의 이해관계 불일치 및 인센티브 결여에 있지
공기업 종사자들만의 비효율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영 효율화 방안은 공기업 비효율성의 원인이 공기업의 경영진을
비롯한 종사자들에게만 있는 것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전문 경영인제 도입을
통해서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공기업을 효율성 개선없이 방치하는 것과 같음을
영국의 민영화 과정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기업 비효율성에 대한 방치는 경제 전반의 경쟁력 약화와 경제적
난국을 지속시킬 것이며 경제의 구조적인 침체는 이러한 정치적 결정과
정책의 시행을 맡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게도 정치적인 패배라는 열매를
안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경영 효율화 방안은 민영화 과정에서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우려해서 대기업집단들의 참여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대단히 그럴듯해 보이지만 민영화가 왜 필요한지 공기업
비효율성의 제거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정부의 인식 부재의 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 효율성 제고가 공기업으로 운영되던 산업들의 경영 효율성
제고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재벌들을 비롯한 대기업들을 제외하고 민영화를
진행할 때 그 목표의 실현이 가능하겠는가?

아마 중소기업의 경영진들이 가장 경영에서 효율적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가장 우수한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시책이 초래하는 결과는 자명하지 않은가.

재벌들을 비롯한 대기업의 경영진들은 특혜에 의해서만 기업을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우월한 경영능력에 의해서 기업을 성장시킨 사람들이다.

그러나 많은 정부의 정책결정자들, 공무원들, 언론 종사자들, 심지어는
공기업을 연구하는 학자들까지도 민영화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효율성이
당장에 제고될 것처럼 전제하고 공기업에 대한 과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대규모 기업집단들에 대한 감정적 반감에 매달리게 될 때 나눌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자꾸만 작아지게 될 것이다.

넷째 이 방안에서 정부는 새로 출범하게 될 민영화 기업의 기업구조에
대하여 법제를 통한 간섭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기업구조의 투명성 부족이 각종 정치.경제적 비리와
부조리의 원인이 된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현행 비리나 부조리 구조는 기업구조의 불투명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의 과다한 간섭과 규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기업의 구조와 경영에 대한 노하우는 주어진 경제여건하에서
기업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부를 포함한 어떤 국외자들도 가장 효율적인 기업구조나 인센티브
구조에 대해서 기업을 경영하고 소유하는 기업인들보다 잘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부의 간섭은 투명성을 제고하기 보다는 가장 효율적인
기업구조와 인센티브 구조의 선택을 제한함으로써 경제적효율성 개선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경영 효율화 방안은 이와같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즉각
재검토되어야 한다.

민영화추진의 중단과 규제개혁을 비롯한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해소를
위한 구조적인 개혁노력의 중지는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근원적인 처방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무한경쟁상태에 돌입하고 있는 국제경제환경
하에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를 초해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정부는 한국전력 등 대규모 공기업들을 망라하는 보다 전향적인
민영화 추진방안의 수립과 민영화의 추진이 정치적인 압력을 최소한으로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기업의 소유구조나 인센티브 구조에 간섭하기 보다는 오히려
주인있는 민영화 조치를 통해서 민영화되는 기업의 완전한 경영권 독립과
기업구조의 자율적인 선택을 보장하고 정부의 규제에 대한 획기적인 완화나
철폐를 통해서 기업과 관련 공무원들간의 유착관계의 발생소지를
제거해야만 할 것이다.

세계 각국의 민영화 사례들은 민영화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율성 향상이
이를 추진한 정치세력에게 정치적인 승리를 장기간 보장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민영화의 과실은 현세대에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향상된 경제적
효율성을 통해서 미래 세대들에게도 공유됨으로 정치인들과 일반 국민들은
민영화의 중단 내지는 연기가 자신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면밀한 계산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