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원기 < 수출보험공사 연구위원 >

지난 94년의 멕시코 사태이후 개발도상국의 비상위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비상위험이란 수입국에서의 전쟁, 외환거래의 제한 등으로 수출대금이
회수되지 않거나 채권 추심이 불가능하게 되는 위험을 말하며 수입업자나
채무자가 파산하거나 계약파기 등으로 자금회수가 불가능해지는 위험인
신용위험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선진국의 경우 비상위험은 거의 없고 수입자나
채무자의 개별적인 신용위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않고 대외
채무의 대부분이 정부보증으로 되어 있어 비상위험이 가장 큰 위험요소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수출이 선진국 위주로 되어 있어 대개도국
비상위험관리는 배부른 선진국의 이야기로 흘려 버렸다.

그러나 대개도국 수출이 이미 총수출의 과반수를 넘어섰고 수출형태
또한 기계설비, 플랜트 등 장기간에 걸쳐 대금을 회수하여야 하는
연불수출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개도국에
대한 비상위험관리는 더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개도국의 비상위험에 대한 우려가 가장 심각했던 때는 지난80년대초의
외채위기 때이다.

80년대초의 외채위기는 국제금리가 급등하여 개도국의 외채이자부담이
과중해지면서 발생하였다.

외채부담이 과중해지자 개발도상국들은 연이어서 대외채무에 대한
원리금상환을 거부하였으며 이는 주요 채권자인 선진국 은행들을
사실상의 파산상태로 만들었다.

80년대의 외채위기는 결국 선진국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개도국 채무를
대폭 탕감해 줌으로써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개도국의 현재 경제상황을 외채위기가 발생한 80년대초에 비해
나아진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개도국의 총외채규모를 보면 80년대초에는 6,000억달러 수준이었으나
95년말에는 약 2조달러에 달해 그간의 인플레를 감한해도 개도국의
외채는 훨씬 증가했다고 할 수 있다.

외채부담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총수출액에 대한 외채원리금상환액
비율도 80년대초의 12%에서 90년초에는 17%로 오히려 증가했다.

더구나 80년대와 달리 개도국들의 자본시장 자유화조치로 단기성 자금인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비중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개도국의 비상
위험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80년대와 같은 외채위기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이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개도국의 비상위험이 표출되는 양상이 과거와는 다르게 신용위험의
형태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우선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는 개도국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고정환율제도의 경우 정치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한 비상위험의 증가는
외환보유고의 감소 등 직접적인 대외지불능력을 저해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유변동환율제도에서는 비상위험의 증가는 대외지불능력을
저해하기 보다는 외환시장의 수급에 영향을 미쳐 해당국의 통화가치가
폭락하거나 국내이자율의 급등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경제 전반에 충격을 주어 민간기업이나 은행의
파산이라는 신용위험의 형태로 표출된다.

80년대 말 이후 아시아, 중남미 등의 개도국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된
민영화의 영향도 크다.

민영화의 결과 정부가 직접 지불을 보증하는 경우는 감소하고 정부
보증은 없으나 프로젝트의 성격은 여전히 정부부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최근 개도국들이 도로나 발전소 등의 건설에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신용위험은 대개 개도국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받게되어 있어 실질적인 비상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개발도상국의 비상위험은 형태만 달리 하였을 뿐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더구나 자본이동을 자유화하고 수출주도의 성장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개도국들의 일반적인 추세이다.

경제가 개방되면 될수록 개도국 경제는 국제경제상황에 더욱 민감하게
영향을 받게 되어 비상위험은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상호의존의 심화는 중심국가의 경기부진이나 국제자본시장의
악화로 인한 개도국의 외환위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게 할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최근의 국제경제조류의 변화가 개도국의 비상위험을 얼마나 크게
하였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94년의 멕시코사태이다.

사태 발생 직전의 멕시코 경제는 과거의 잣대로만 보면 비상위험의
정도가 그리 심각했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외채규모는 멕시코의 능력으로 충분히 상환가능한 수준이었고 외환
보유고 또한 충분했다.

그러나 멕시코 경제에 대한 국제자본의 신뢰가 추락함으로써 대대적인
핫머니의 유출을 가져왔고 이는 페소화의 폭락과 함께 심각한 경기침체를
몰고와 많은 기업의 파산을 초래했다.

멕시코사태를 미처 예측하지 못하였던 우리 기업과 은행들도 상당한
피해를 보아야 했다.

멕시코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 자국통화의 평가절하에
대한 수입바이어의 취약성 여부 등 과거에는 중요하지 않게 취급하였던
요소들을 우리 기업과 은행들은 다시금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계량기법 등을 이용한 모형을 개발하여 비상위험을 평가하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라는 것에도 유의하여야 한다.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비상위험 평가는 자의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반면 객관적인 모형에 기초한 비상위험 평가는 일관성이 있으며 여러
국가들의 비상위험을 구체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우리기업과 은행들도 주먹구구식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과학적인 모형을
활용함으로써 비상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