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 한국이동통신 사장 >

한여름에 시작한 연재의 마지막 회를 쓰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덧
가을이 깊었다.

바쁜 일과와 잦은 국내외 출장이 겹치면서 4개월에 걸친 연재가 때로는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작 마지막 회를 쓰는 감회는 생각처럼 홀가분하지만은 않다.

물론 언젠가는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의 발달한 역사를 회고 정리해 두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매주 때를 맞춰야 하는 연재라는 강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없진 않다.

사실 지나온 길에서 느껴지는 성취나 회한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과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수성가한 "소년 가장"처럼 외로운 나의 이력에 자신의 수명이 80이라는
예언을 듣고 유유자적한 마지막 15년을 위해 65세가 되자마자 은퇴를 선언한
일본 "교세라"의 이나모리 회장과 같은 여유는 어울리지 않나 보다.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되도록 많은 부분을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의
기술자립에 이바지한 연구개발의 숨은 얘기를 담는데 할애할 것임을
다짐했었다.

기록된 양이 많아야만 충실한 회고가 된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제한된
원고량을 솜씨있게 안배하는 일은 무딘 나의 재주로는 힘에 부쳤다.

이런 나의 모자람은 밝혀야 마땅하지만 지면의 한계로 미처 다루지 못한
많은 일들과 그 일들을 하느라 고락을 함께 한 분들을 일일이 거명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분들에게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거듭 말하지만 몇몇 영웅들의 거대한 기념비가 있는 나라보다 비록 이름은
없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수많는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무덤에 꽃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 더 희망을 거는 내 마음을 부디 헤아려 주기 바란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줄곧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다시 사는 경험을 했다.

때로는 제 나라 말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던 시대에 태어나 과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라디오나 전축 같은 집안의 귀중한 물건들을 손이 닿는대로
분해해 놓고는 다시 조립을 하지 못해 쩔쩔매던 어린 소년의 마음이 되기도
했다.

6.25전쟁통에는 고향을 떠나 피란학교를 다니는 고등학생이 되어 무전기의
부속품을 구하러 시장통을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환도 이후에는 아마추어 무선에 몰입한 대학생으로서 전세계를 전파를
타고 날아다니며 벗들과 사귀느라 밤을 샜으며 60년대에는 후진국에서 온
유학생이 되어 말과 물이 설고 낯도 설은 미국 땅에서 밤잠을 설치며
학업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리고 30, 40대의 왕성한 혈기로 통신기 국산개발 등에 불철주야하던 ADD
시절, 50대의 경륜으로 전전자 교환기(TDX)개발 사업을 관리하던 KT시절,
그리고 과학기술처와 KIST를 거쳐 정보통신부의 국책사업으로서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CDMA) 개발을 지원하다 KMT로 옮겨 상용화까지 하는 등
나는 나의 전생애를 또박또박 복기하며 거듭 사는 기회를 가졌다.

물론 그 사이에 몇 장의 빛바랜 흑백 사진에서 동고동락하던 그러나 다시
만날수 없는 옛 동료들과 우정어린 해후를 했으며 제법 화려한 컬러사진에서
는 그때 미처 말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느끼지 못한 보람을 되새겼다.

아마 일반 독자들은 그동안 수시로 등장한 생소한 기술 용어들 때문에
이 회고를 더러 어렵고 낯설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또 정보통신분야의 발달을 당연한 기술적 진화로 여겼던 분들에게는
지루함을 안겨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니 우리나라 정보통신사업에 기여해 온 사람들에게는
그때그때 다급했던 우리의 형편과 이를 극복해 보려는 노력과 땀이 덕지덕지
배어있는 시골 고향마을의 방죽만큼이나 믿음직스럽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때로 다듬지 못하고 직설적인 나의 회고에 이해를
더할수 있을 듯하다.

앞으로 더 열의를 갖고 보수도 하고 개축도 해야겠지만 이 정보통신산업
이라는 방죽에는 그 어려운 시기에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려 비범한 일을
해낸 보람이 담겨 있으며 차마 필설로 못다 할 그 무엇도 묻혀 있다.

연재를 거듭하며 이것저것 꺼내 놓고 보니 아쉬운 기억도 많았지만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은 그래도 세속에 이끌리거나 흔들리지 않고 비교적 외곬으로
삶을 누려왔다는 점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어릴 적 취미를 키워 그대로 평생의 직업으로 살렸으며 젊음을
바쳤던 군용무전기 개발이 민생무전기로, 또 전전자교환기 기술이 이동통신
기술로 이어지도록 애썼다.

그저 그만하게 여겨졌던 흥미로 맺은 작은 결실들이 연결고리가 되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다.

나의 이런 삶이 특별한 삶이 아니라 우리 정보통신분야의 미래세대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과학기술자로서 여기저기 모임에도 참석하고 강연도 하다보면 종종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수준을 어떻게 보느냐고 내게 묻는 사람이 있다.

그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한가지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의 수준은 그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수준일 것이라고
대답한다.

모든 문화는 그 사회 전반과의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더불어 발전하는
것이지 어느 한 분야의 몇 안되는 천재에 의해 돌출하지는 않는다.

나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둘러싼 모순과 불합리같은 어두운 면들을
송두리째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희망적이지도 격정적이지도 않다.

내가 바라는 사회는 무균의 사회가 아니라 무병의 사회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도 많은 균들이 살고 있듯이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만그만한 모순과 불합리는 존재했다.

내가 그리는 유토피아는 그러한 어두운 면들이 국가나 사회의 안녕과 질서
그리고 혁신을 저해하는 병리로 나타나지 않도록 예방할수 있는 사회다.

얼마 전부터 우리는 글로벌라이제이션, WTO, OECD같은 말들의 소용돌이속에
살고 있다.

혹자는 이 상황을 구한말에 비견하기도 한다.

또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오늘의 위기에 대한 대책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하나같이 온도와 물살 깊이를 모르는 바다에 뛰어
드는 것처럼 불안하고 위험스럽기도 하다.

나는 우리 민족이 가진 몇몇 특성을 분류하고 이를 우월성이나 취약점으로
지나치게 확대하여 관념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힘이 약한 나라는 힘이 강한 나라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논리는
어떤 선험적인 우월성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

세계는 지금 산업화시대를 지나 정보화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모든 나라들이 정보화를 통해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 생산성 향상 등을
도모하고 있으며,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제 선진국에 도달하는 길은 어느 나라가 먼저 정보통신산업과 문화를
잘 융합하고 주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점에서 정보통신산업은 우리 민족의 응집력을 강화하고 나라의 힘을
키우는, 어쩌면 가장 유효한 도구나 수단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보 사회의 기반이 될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을 위해 2015년
까지 모두 45조2천억원이라는 막대한 투자를 할 계획이며 그 대부분을
민간부문이 하기로 되어 있다.

이제 이 사업을 주도할 책임자들은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그 동안의
국책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문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과제
마다 꼼꼼히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가지 더 정보통신분야에 거는 기대와 우려를 덧붙인다.

예측컨대 정보통신산업과 문화의 융합은 우리나라의 통일에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구의 경우처럼 정보 미디어의 힘만으로 북한이 자유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정보 미디어의 위력을 이용은 하되 그 방법은 "뚫고 들어가는" 힘이 아니라
"스며드는" 문화이었으면 한다.

따라서 정보 미디어의 위력에 대한 나의 기대와 우려는 반반이다.

이제 나는 이 땅의 과학기술을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우리 과학기술의
좌표가 어디인가를 묻고 싶다.

그들이 각자의 관점에 따라 여명기로 보든, 도약기로 보든, 성장기로 보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잘 썩은 낙엽처럼 이 나라의 과학기술분야에 거름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바라건대 그 어려운 시기에 평범한 선배들이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
온 것처럼 능력있고 출중한 오늘의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주도적으로 모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면 아마 세계적인 발견이나 발명이 나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때에 우리 과학기술계도 노벨상을 기대해 볼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의 주체는 사람이다.

과학기술을 선진화하려면 사람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새삼스럽게 나를 일깨운 것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
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능력과 재주를 제대로 펴기 어려웠던 시대에 철없는
호기심을 마음껏 발산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다시
한번 머리 숙인다.

그리고 지구 곳곳을 동분서주해도 괜찮은 건강한 육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린다.

또 앞날을 알수 없었던 유학 생활의 뒷바라지와 집안을 평안하게 보살펴
준 아내의 변함없는 내조에 사랑을 바친다.

그리고 찾아다니지 않아도 보람있는 일자리를 항상 마련해 준 이 나라와
나를 아끼고 도와준 선배 동료 후배들 모두에게 거듭 감사한다.

이만한 회고를 마음껏 펼칠수 있도록 배려한 한국경제신문에 고마움을
전하는 일 역시 마땅하다.

나는 내 기억의 선택된 부분이 정보 통신분야의 어제와 오늘을 어우르는
가장 확실한 반성적 회고로 더 나은 내일의 기틀이 되기를 희망했다.

이제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미래의 과학기술자들의 몫으로 남겨둔채
이 글을 맺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