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경

2년전쯤 한 국가연구기관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비공개 세미나를 가진
적이 있다.

그 때 논의됐던 주제들중에는 "남북경협 확대방안"과 "남북한 군비통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남북한간의 군사적 대립관계를 통제할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고
동시에 남북경협이 확대될 경우 한반도의 평화정착이 가능하리라는
일부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동안의 대북정책은 군사적 대립을 극복할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은 등한시된 채 유화정책만이 강조된 일면이 있다.

남북경협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보다는 화해와 협력이 "대세"라는 분위기에서 독자적인 논리에 의해
추진되어 온 것 같다.

더구나 같은 시기에 관련기관의 대공수사권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동해안지역에서는 철조망이 철거되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우리는 북한 동조세력이 폭력시위와 함께 공공연하게
북한체제를 찬양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았고,동해안 지역에서
잠수함을 통한 무장공비의 출현을 허용하였다.

북한 잠수함사건 이후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엄청나게
바뀌고 있다.

뒤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대북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대화를 통한 유화정책보다는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대북정책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반면 남북경협에 대한 논의는 돌언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일부 식자들은 남북경협을 논하는 사람들을 북한의 실체를 모르는
철부지들이라고까지 평하기도 한 다.

따라서 남북경협에 종사해온 일부 기업인들이나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온 이른바 "햇볕론자"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현 상황에 당혹해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남북경협-국가안보 관계에 있어 무엇인가 혼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일각에서는 남북경협이 확대되면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때문에 대북
경계에 소요되는 노력을 다소 완화할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 같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남북경협이 확대되더라도 결국 김정일 정권의
연장만을 도와줄 뿐 굶주림에 지친 북한 주민들을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과 북한이 대남전략의 연장선상에서 남북경협을 추진하기
때문에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신중론을 제기하곤 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사실은 남북경협과 국가안보는
서로 괴리되어 있는 다른 성질의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즉 국가안보가 불안할 경우 남북경협은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기보다는 논란만을 부추길 뿐이지만,국가안보가 튼튼할 경우 남북경협은
보다 당당하게 추진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우리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우려하여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이상으로 북한도 남북경협을 통해 자유세계와 남한의 실상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경협은 기업인들이 무턱대고 달려들기에는 조심해야 할 일면이
있다.

이미 70년대 초반에 북한이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 휴전선 일대에
땅굴을 팠던 사실에서 잘 나타나듯이 북한은 남북경협을 통해 해방무드를
조성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대남적화전략을 더욱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남북경협을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북한측은 우리 기업인들에게
잘 위장된 정보를 마치 선심쓰는 양 제공함으로써 우리측의 정보분석에
혼선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다.

북한기업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여러가지 정보를 입수한 우리 기업인들은
이를 우리 정부에 전달하겠지만,여기에는 북한측의 역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우리측의 판단을 흐리게 할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측은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인들을
교묘하게 함정에 빠뜨린후 이를 미끼로 기업인들을 좌지우지할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상황에서 남북경협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할수
있는 많지 않은 수단중의 하나이며, 북한에 미치는 파장도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될 중요한 대북정책의 하나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단 남북경협을 추진하는데 있어 중요한 점은 우리의 안보를 안팎으로
튼튼히 한다는 대북정책의 원칙이 실천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우리 정부의 안보측면 강화는 단기적으로는
남북경협 논의를 위축시킬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남북경협을
좀 더 자신있게 추진할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는 작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 남북경협과 관련하여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국방을 튼튼히 하도록 군을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고
관련기관의 대공수사권을 강화하여 북한의 어떠한 공작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보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의 안보를 강화하는 일은 북한의 예측할수 없는 행동이 도발로
이어지는 것을 막음으로써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게 하는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안보가 굳건해지면 우리는 북한에 대해 보다 자신감을 갖고 보다
폭넓은 지원책을 제시할수 있고, 북한도 자신의 마지막 수단인 군사적
도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화의 장으로 나올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긴장이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일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할수 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 "안보우선론"과 "햇볕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