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서 거의 쌍욕에 가까운 말을 뱉어내는 희봉을 평아가 눈치껏
위로하느라 애를 썼다.

"아씨께서 분해 하실 만도 해요.

얼마 전에도 대감님이 포이의 아내 일로 아씨 속을 뒤집어놓았잖아요.

그 난리 통에 아씨는 나끼지 의심하고 미워했죠"

"어유,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포이의 아내 그년이 얼마나 음탕한지
그때 뒈지지 않았으면 지금도 가랑이를 벌리고 다른 남자들 꼬드기느라고
발정난 암캐처럼 돌아다녔을 거야.

우리 양반도 참, 돌아도 한참 돌았지, 그런 년이 뭐가 좋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안방에까지 끄어들이고"

포이의 아내 일을 떠올리자 희봉은 이번 우이저의 일로 가뜩이나 화가
나 있는 판에 더욱 분기가 치솟았다.

"포이의 아내 같은 여자들의 짓거리를 색광증이라 한다면서요? 자나
깨나 색만 밝히는 증세 말이에요.

그런 여자한테 걸리면 남자들 제명대로 못 산다면서요?"

"그런 년들은 남자들 제명대로 살 수가 없지.

그래서 포이 아내 그년 제 목을 제가 매고 죽었잖아"

그러면서 희봉은, 우이저 이년도 어디 두고 봐라, 하면 이를 악물었다.

"대감님도 너무 하셔, 이렇게 아리따운 아씨를 두고도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파시다니"

평아가 새삼 희봉의 자태를 훑어보며 그 미색에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가씨 가문 남자들 핏줄이 그런걸 뭐. 시아주버니도 첩들을 얻다 못해
며느리까지 건드리고 말이야. 아까운 며느리 요절하게 만들고"

희봉은 문득 영리한 진가경의 모습이 뇌리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진가경이 죽은 직후에 혼령으로 나타나 머지않아 가씨 가문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할 일고 생각났다.

무엇보다 가씨 가문은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망하고 말 거야.

진가경은 가문의 몰락을 대비하여 몇 가지 지침을 일러주기도 했지만,
이렇게 남편까지 첩질을 일삼으니 나도 가씨 가문이 몰락하든 말든 상관할
마음이 없구나.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지만, 이번 우이저 일도 사실은 가진
대감님 잘못이 더 큰 것 같아요.

동생이 아무리 처제를 첩으로 달라고 간청을 해도 형님된 입장에서
따끔하게 한마디 꾸짖기만 했어도 사태가 이 지경으로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평아가 희봉의 마음속 생각을 읽으며 종알거렸다.

"글쎄, 형제들이 피장파장이라니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해가면서 바람 피우기 내기를 하는 가씨
집안이라니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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