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들에게 성은 무엇일까.

모증권사에 근무하는 김철우씨(29.가명)는 요즘 결혼을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배우자가 될 이모양(26)이 혹시 "처녀"가 아니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밤새기 일쑤다.

김씨는 평소 스스로를 신세대 직장인으로 자부하고 있었다.

배우자의 "혼전순결" 문제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극단적으로 "처녀 아니면 안돼"라는 식의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고루한 조선시대 사대부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서로가 사랑하고 원한다면 혼전의 성관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

그러나 이 문제가 막상 자신의 문제로 닥치고 보니 평소 생각과는 달리
뭔가 찜찜하고 내키지 않는 마음이 고개를 든 것이다.

김씨의 경우는 요즘 신세대 직장인들이 성과 결혼에 대해 갖고 있는
이중적인 가치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즉 겉으로는 성과 결혼에 대해 개방적이고 급진적인 것처럼 보여도(남의
이야기일 경우) 자신의 문제가 되면 예상보다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얘기다.

얼마전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18세이상 29세이하의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의식조사에서도 신세대들은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개방적이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남성과 여성 모두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체응답자의
63.2%가 "전적으로 동의"하거나 "대체로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26%에 지나지 않았다.

"동의한다"는 응답자중 여성은 68%인데 비해 남성은 58%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혼전순결"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근 모방송사가 결혼 적령기의 예비 신랑.신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혼전 순결이 결혼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될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0%가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응답했고 나머지 20%만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결과는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만약 자신이 실제k
그런 경우에 직면한다면 심각하게 고려하겠다는 대답이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외국계은행에 근무하는 김모대리(30)도 "기성세대들이 보기에 젊은
직장인들이 얼핏보면 무분별하게 생활하는 것 같지만 눈에 잘 띄는 소수의
"튀는"사람들이 그럴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건전하고 실속있게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성과 결혼에 대해선 다소 혼란스런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에서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기준이 있는 점도 신세대의 특징.

직장내에서 능력도 인정받고 외모도 출중해 사내 남자직원들로부터
데이트하고 싶은 대상 1호로 꼽혀온 최모씨(25)가 그런 경우.

소위 "킹카"급 남자들과 많은 연애를 했지만 최씨와 결혼한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이도 최씨보다 8살이나 많았다.

그렇지만 같은 또래의 남성과는 달리 안정적인 직장에 든든한 경제력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외적인 조건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결혼은 연애가 아닌 생활인
만큼 정말로 자신과 맞는 사람인지 요모조모 꼼꼼히 따져본 후 결정을
내렸다.

한국리서치의 이영주 연구원은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면 물론 좋겠지만
결혼은 책임있는 선택이라는 점에서 조건을 따지는 것을 무조건 계산적
이거나 이기적인 행동으로만 볼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대들의 성의식을 읽게 해주는 한마디다.

< 김재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1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