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은 신방 건넌방에서 마음을 졸이며 신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신경을 곤두세웠다.

언제 보옥이 신부가 대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신방을 뛰쳐 나올지도
모르고 보채가 자신을 속이는 일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여 울음을
터뜨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밤이 깊도록 희봉이 걱정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교합의 기미를 느끼게 하는 소리들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희봉은 넌지시 미소를 떠올리며 차츰 긴장이 풀어졌다.

그러면서 남녀가 부모의 슬하를 떠나 혼인을 하고 몸을 섞고 아이를
낳고 하는 이 모든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법 응승깊은 생각들을
해보았다.

남편 가련과 혼인하여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한시도 음편할 날이
없었던 지난 세월이었다.

그런 문제가 생길 적마다 희봉은 거의 살의에 가까운 투기에 사로잡혀
스스로 주체를 할수가 없을 정도였다.

남편과 우이저의 일이 터졌을때도 그러하였다.

희봉은 남편 가련이 자기 몰래 우이저와 새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을
듣고는 눈에서 불꽃이 튀는 느낌이었다.

우이저는 희봉의 시아주버니 가진의 처제가 되는 여자였다.

희봉이 시녀 평아를 불러 그 소문의 출처를 따졌다.

"너,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느냐?"

"중문을 지키는 아이들한테서요"

"중문을 지키는 애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개중에서 누가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느냐 말이야"

희봉이 언성이 자꾸만 높아지려고 하였다.

"왕아예요"

"왕아? 왕아를 당장 오라고 해"

왕아가 쭈볏쭈볏 몸을 사리며 희봉 앞으로 와 고개를 숙이고 섰다.

"네가 대감님이 딴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을 내고 돌아다닌다며?"

희봉이 거뭇거뭇 수염이 나기 시작하는 왕아의 턱주가리를 노려보며
윽박질렀다.

"저는 하루 종일 중문을 지키는 일만 하는데 그런 일을 어떻게 알수
있겠어요? 저도 홍아한테서 들은 거예요"

"홍아? 이놈들이 나한테는 일러주지않고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소문이나
내고 다녀? 홍아 그녀석 지금 어디 있어?"

"새아씨 집에 있어요"

왕아가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새아씨? 그럼 난 헌아씨란 말이야? 이 발칙한
놈같으니라구"

희봉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애매한 왕아에게 욕을 퍼부어 대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