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개정보다도 더 어렵다는 노동관계법 개정이 노사합의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지난 14일 열린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노동관계법 개정요강소위에서
경총과 민주노총이 각각 핵심쟁점사항에 대한 기존입장을 수정할
용의를 밝힘으로써 막판 대타협의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1일 노개위탈퇴와 함께 장외투쟁을 선언했던 민주노총이 태도를
바꿔 이날은 소위에 참석, 지금까지 극력 반대해온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경총도 완강했던 입장을 바꿔 단위 사업장까지 복수노조를 허용할수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비록 양측이 이같은 타협안에 전제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최대 쟁점에
유연한 자세로 전환함으로써 법개정작업이 좌초위기를 벗어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같은 입장변화가 곧바로 노사합의에 의한 법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양측이 내놓은 양보안들은 다분히 명분축적을 위한 협상 카드라는
인상이 짙다.

경총이 복수노조 전면허용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현실적으로 노동계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또 민노총이 수용의사를 비친 변형 근로시간제도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전제로 한 것이며 정리해고의 요건을 놓고도 노사간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요컨대 최종 합의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하지만 노사 양측이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국민여론을
의식하는 이상 대타협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우리는 본다.

그와 같은 대타협의 실현을 위해선 우선 민주노총이 노개위에 정식으로
복귀해 법개정작업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개위 소위에서만 의견을 제시하고 전체회의에는 계속
불참하겠다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만약 오는 18일의 마지막 전체회의에도 불참한다면 이는 그들의
타협제스처가 여론 호도용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노사 양측은 몇가지 전제조건 때문에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일부 쟁점사항에 대해 각각 경총및 민주노총과 견해를 달리해온
전경련과 한국노총도 타협안이 제시된 이상 신축적인 태도로 대타협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동관계법 개정을 유보하거나 핵심쟁점을 내년도 2차
개혁과제로 넘기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지만 이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어렵다고 포기할 만큼 우리의 경제현실은 그렇게 한가롭지 못하다.

내년으로 미루자는 얘기는 대통령선거 등을 감안할 때 아예 하지
말자는 말과 같다.

거듭 강조하지만 노사개혁은 더이상 늦출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한 발짝을 남겨두고 있다.

노사 모두 잡다한 굴레와 명분을 벗어던지고 국민경제의 논리로
돌아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