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 중앙대 교수 >

우리경제는 소득 1만달러의 고비를 넘으면서 심각한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불경기와 인플레의 골이 깊어지면서 국제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누적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경험한바 있다.

예컨대 70년대 오일쇼크도 있었고 올림픽을 치른 이후에는 거품이 꺼지면서
나타나는 불황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황은 세계경기변동에 수반된 현상이었으며, 따라서 모든
나라가 함께 당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우리의 경제난은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겪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문제의 책임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있음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사람도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를 맞게 되면 건강 책임 욕구 등 모든 면에서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된다.

이때 이 변화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위기를 자초할수 있다.

우리경제가 1만달러 소득시대에 들어섰다는 것은 발전단계면에서 그러한
성숙기 구조변혁에 당면하고 있음을 뜻하며 특히 무한경쟁 개방체제의
회오리속에서 맞이하는 변혁이기 때문에 적응의 단치은 더욱 클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숙단계의 우리경제를 밀고 갈 성장엔진, 즉 기업효율이나
정부기능, 그리고 사회제도와 의식구조 등은 60년대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몸은 커졌는데 옷은 옛날 그대로인 셈인데 이것이 바로 현 위기의
본원이라고 할수 있다.

경제발전과정은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완전고용에 도달하기까지의
초기단계와 그 뒤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생산효율을 높여야 하는 후기
단계로 나뉘어 볼수 있는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경제는 후기단계에
들어서 있다.

경제발전이 후기단계에 진입할때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는 감속화현상이다.

경제성장 사회적 승진 재산증식 등의 속도가 둔화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는데 실업아래서는 고용량의 증가와 생산성
증가가 상승적으로 경제를 성장시키지만 완전고용이후에는 생산성증가에서만
경제성장이 나온다는 점, 인구구조의 노령화가 급진전되어 복지비의 증가 등
경제노화가 촉진된다는 점, 수출신장률이 꺾이게 되고 사회간접자본의
부족이 심화된다는 점 등을 지적할수 있다.

이 단계를 거친 오늘의 선진국들이 2~3%의 성장으로 만족하고 있는 점이나
60년대까지 9.4%씩 성장해온 일본이 현재의 달러가치에 의한 1만달러 소득을
실현한 70년대에는 5.1%로 성장률이 떨어진 사실 등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예시할수 있다.

이렇게 볼때 지금 우리경제의 당면문제는 초기단계에서 그동안 9%씩
성장해 오던 경제를 향후 국제수지와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6%정도의
지속적 안정, 균형성장체제로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만과 싱가포르는 이 문제에 현재까지는 성공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런가.

발전후기의 감속성장기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성장감속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욕구를 감속조정하는 노력을
동시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성장감속을 최소화하는 문제부터 생각해 보자.

성장감속을 막으려면 저비용.고능력체제로 이끌어야 한다.

즉 임금과 금리와 사회간접비는 되도록 싸게 하고 더 땀 흘려 일해야 하며
근면 저축해야 하고 기업은 과감하게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한경쟁 개방시대에 살아남을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임금을 안정시키려면 생활향상 욕구를 자제 하든지, 아니면 온 가족이
일터에 나가는 이른바 "맞벌이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중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지난 10년사이에 임금은 무려 4배나 올라 고임금국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금리라도 내려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금리는 저축과 투자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즉 금리를 내리게 하려면 더욱 근면 저축하고 투자를 자제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느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금리는 무슨수로 내리는가.

혹자는 돈을 더 찍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이것은 금리의 단기적
현상과 장기적 현상을 혼동하는 소치이다.

돈을 많이 찍어낼수록 일시적으로는 금리가 내리지만 그때가 지나면
오히려 더 오르게 되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교통비 환경비 교육비 주거비 휴식비 등 사회간접비는
생산비와 생활비 결정에 있어 그 비중이 커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는 발전하면 할수록 사회간접비가 누적적으로 커질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그 틀이 짜여가고 있다.

이것은 인구나 산업의 수도권 과잉집중과 사회간접자본 정책의 실패에
주로 기인한다.

그리하여 현재의 틀이 고쳐지지 않는한 우리는 고소득국이 되더라도
교통난 환경난 주거난 휴식난 등에 시달려야 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고비용구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비용을 낮출수 없다면 이것을 흡수할만큼 생산성이 높아야 할 것인데
기업이나 정부나 생산성을 답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경제활력이 꺾일수 밖에 없지 않은가.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고욕구의 관성이다.

성장감속으로 줄 것이 줄어들면 바라는 것도 줄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경제가 9% 성장시대에서 6% 성장시대로 이행하고 있다면
기업이나 정부나 가계나 모두 욕구를 여기에 맞추어 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국민들의 생활향상 욕구는 개발초기단계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민들은 4~5년마다 이사를 하고 있어 이사하는 빈도가 다른 나라의
두배이상에 이르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생활향상 욕구가 그만큼 강렬
하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다.

승진욕구나 소비욕구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수 있으며 특히 개방의
물결은 이러한 욕구를 더욱 충동질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의 팽창욕구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은 소유와 경영의 세습을 기본구도로 하는 개발초기적 의식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양중심의 과잉투자와 과잉성장의 관성을 그대로
지키고 있고 정부도 되풀이되는 팽창예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같이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시정하고 치유시키는
일을 정부가 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부의 경제적 리더십이다.

그리고 이러한 리더십은 당장의 문제보다 백년대계를 투시하는 역사적
소명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5공까지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제력이 그러한 기능을 수행해 왔으나
그것은 6공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무너졌다.

지금은 당연히 시장기능을 바탕으로 한 시민적 자율적 통제력으로 대체
되었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경제문제가 정치논리에 지배되고 정권임기 때문에 정책이 근시화하고
선거 때문에 인기없는 정책을 기피하게 되는 현상을 흔히 "민주화의 코스트"
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그러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 경제난의 치유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경제는 지금 생산면에서는 고비용 저능률로 인하여 "수지
안맞는 경제"가 되어 있고 소비면에서는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지속적으로
초과함으로써 "적자경제"가 되어 있다.

이것들이 지금 경기침체 국제수지 적자 인플레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치유할 기회를 우리는 몇해 전에 놓친 일이 있다.

올림픽을 전후하여 극심했던 욕구분출과 노사분규, 그리고 부동산투기
등으로 오늘과 같은 고비용 저능률현상을 자초한 일이 있다.

이 때문에 90년대초에 심각한 불황을 겪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하여
우리 경제에 욕구자제와 감량조정의 바람이 스며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93년 새정부가 들어서면서 갑자기 경기부양책으로 선회하는 바람에
체질개혁의 호기를 놓친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아픔으로 이것들을 치유하여 새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국민이 하나가 되어 현 경제난국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문제가 치유될때 까지 내핍체제의 실천을 공동선언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감량경영, 정부는 감량재정, 가계는 감량생활을 다짐해야 한다.

이 고통스러운 길을 어떤 방법으로 실천한단 말인가.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율적인 자각을 통한 솔선수범의 길이다.

그러나 서로 고통분담을 기피하려 한다면 그 실현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불황을 겪으면서 거기서 느끼고 배우는 수 밖에 없다.

기업은 불황의 고통을 겪으면서 감량조정과 합리화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다.

정부와 가계에 대해서도 불황은 욕구를 줄이고 일을 더 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할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경제의 강력한 경쟁력은 그동안 오일쇼크나 엔고 등 여러차례의
심각한 불황을 겪으면서 다져진 것이라는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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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서울상대 졸업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
<>한국은행 조사역
<>중앙대 교수.정경대학장.대학원장
<>금융통화위원
<>국제경제학회장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
<>건설부장관
<>(현) 중앙대 교수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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