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L씨는 올해초 서울의 아파트에서 일산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며
"꿈에 그리던 집"을 갖게 됐다.

금호건설이 지은 새 집은 모든 것이 획일화된 기존주택과는 달랐다.

기본적인 설계에서부터 창문이나 바닥의 마감재까지 L씨가 원하는대로
"주문제작"됐다.

L씨는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 보기를 좋아하는 장남을 위해 서양주택처럼
지붕에 커다란 창문을 내기도 했다.

건축비가 평당 300만원으로 일반주택보다 조금 높았지만 자신이 원하는대로
견실하게 짓는다는 점에서 L씨는 만족감을 느꼈다.

L씨의 집은 최근 인기를 끌어가고 있는 "주문주택"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집을 설계한 금호건설 베스트홈팀의 이현숙 실장(하우스 코디네이터)은
"똑같은 장식의 아파트, 똑같은 구조의 단독주택에 싫증난 사람들이 L씨처럼
자신만의 개성이 깃든 주거공간을 갖기 위해 주문주택을 찾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획일화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거부하는 사례는 주문주택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니다.

의류 가구 컴퓨터 금융 등 산업의 전분야에 걸쳐 일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신세계백화점 맞춤와이셔츠 코너.

한달에 250여명 가량이 여기서 자신의 체형과 기호에 맞는 와이셔츠를
주문한다.

이 코너의 배봉환 과장은 "맞춤양복이나 맞춤속옷 등은 과거 특이체형으로
기성품을 못입는 사람들이 이용했으나 최근엔 기성제품에서 원하는 디자인
이나 옷감을 찾지 못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한벌당 가격이
5만~10만원으로 비싸지만 한번 입기 시작한 고객들은 계속 찾는다"고
말했다.

"911 컴퓨터" "아프로만" 등 PC 유통업체들은 고객이 원하는대로 컴퓨터를
조립해 주고 있다.

대형메이커에서 생산되는 컴퓨터들이 불필요한 기능들을 잔뜩 추가해
가격을 올리는 것과 달리 사용자들의 수준이나 사용목적에 맞는 기능만으로
컴퓨터를 꾸며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글쓰는 사람은 "워드프로세서"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좋은"조이스틱"이,
네티즌에게는 성능좋은 "모뎀"이 가장 필요하다는 식이다.

기업의 경영환경이 "대량생산과 대량판매"에서 출발,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를 넘어 이제는 소비자 개개인의 수요를 중요시해야 하는 "On Demand
(주문수요)" 시대로 접어 들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며 소비성향은 갈수록 "개성화"되고 있다.

각종 정보매체의 발달은 소비자들이 수동적으로 상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상품과 정보를 직접 찾아나서는 프로슈머(Prosumer)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예전에는 신문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서만 정보를 습득할수 있었던
소비자들은 이제 PC통신 등을 통해 직접 기업과 만나고 있다.

기업경영에 있어 "데이터베이스(DB) 마케팅"이 중요해진 것도 "On Demand"
시대의 특징이다.

DB 마케팅이란 소비자 개개인의 정보를 컴퓨터 등을 통해 축적한 뒤 이를
바탕으로 세분화된 판촉행위를 하자는 것이다.

오리콤 이동훈 마케팅본부장은 "산업혁명시대에는 대중광고를 통해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동일한 판매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이지만 기업의 판매경쟁이 심해지고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목표고객"을 향한 세분화된 틈새마케팅이 중요해졌다"며 "이제는 이를
넘어 소비자 개개인이 마케팅의 목표가 되는 이른바 1대1(One to One)
마케팅 또는 주문(Tailored) 마케팅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소비자가 생산자보다 우위에 서는 "On Demand" 시대는 기업의 새로운
변신을 원하고 있다.

소비자의 니즈에 따른 기업조직의 재편, 마케팅기능의 전진배치, 유통업체
와 제조업체가 전략적인 제휴를 맺는 제판동맹, 통신판매 방문판매 등
무점포시장의 확대 등은 모두 "On Demand" 시대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산업의 지형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