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일,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네번째로 확대됐을 때의 일이다.

ING베어링을 비롯한 자딘플레밍 한누리살로만 모건스탠리 등 증권거래소
회원으로 등록된 4개 외국증권사의 국내지점들의 활약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날 외국인 주식매매주문의 25%를 이들이 장악한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베어링과 자딘플레밍은 국내외 증권사를 통틀어 외국인위탁매매 서열에서
2위와 3위에 랭크됐다.

국제업무에 주력한다던 쌍용이나 LG 동서증권 등 대형사들은 "참패"의
울분을 삭여야 했다.

과거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BZW증권 서울지점에 근무하고 있는 엄상륭차장.

그는 반도체 부문에 있어 국내에서 내로라는 애널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외국증권사는 말할 것도 없고 투신이나 보험등 국내기관투자가들도 그의
분석에는 귀를 기울인다.

삼성전자 주가가 12만~13만원에 머물고 있던 올초 "외로이"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으나 기관들은 그의 말을 믿고 삼성전자주식을 내다 팔았다.

그이후 이 주식은 5만원대까지 밀렸다.

다이와증권의 장희순상무.

그는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하는 법인영업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학연과 지연 등이 유난히 강조되고 있는 토속적인 국내증권가 풍토에서
그는 외국증권사라는 한계를 잊어버린지 오래다.

다이와측의 든든한 지원을 배경으로 기관물량 수주전에서 국내 영업맨을
앞지르고 있다.

이처럼 외국증권 국내지점들이 비상을 위한 날개를 펴고 있다.

아직은 인력도 적고 영업규모도 크지않은 편이지만 숨은 잠재력으로
볼때 머지않아 무서운 태풍으로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외증지점들이 그동안의 시장탐색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는데다 지점설치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는 등 여건도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증권사들이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1년부터.

사무소 형태여서 관련정보를 수집해 본국에 보고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던 것이 91년부터 지점설립이 허용되면서 국내영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 진출한 외국증권사는 36개사.

이중 모건스탠리 자딘플레밍 노무라 등 19개사는 지점으로 진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프루덴셜 산요 등 16개사는 사무소 형태로 나와있다.

게다가 지점을 내기 위해선 사무소 형태로 1~2년이상 있어야 한다는
"전치주의"가 95년에 폐지돼 이제는 언제라도 지점으로 바꿔 국내영업
진출이 가능한 상태다.

외국증권사에 대해선 지난 92년부터 합작증권사 설립이 허용돼 활동반경이
넓어졌다.

페레그린(지분율 46%)이 동방유량(지분율 41%) 등과 합작해 지난 92년11월
동방페레그린으로 합작증권사의 돛을 올렸다.

3년뒤인 지난해 12월에는 살로만브라더스(지분율 49%)가 아남산업(지분율
9.9%)등과 함께 한누리살로만을 출범시켰다.

올해말에는 스미스바니(지분율 49%)가 외환은행(지분율 51%)과 합작으로
증권사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대한생명도 합작증권사를 설립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파트너를 물색중이어서
곧 결실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증시에 대한 규제완화가 이뤄지고 선물.옵션시장이 개설되는 등 여건이
급변하고 있는 것도 외증지점에 날개를 달아주는 요인이다.

파생상품이나 국제업무 등 틈새시장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덩치가 작은
외증지점들이 장점을 발휘할 기회가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국내증권사들을 앞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증권사들은 질보다 양중심의 경영으로 흘러 아킬레스건이
성치않은 상태다.

보유주식 평가손으로 인해 이익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위탁수수료율도 앞으로 1~2년안에 자율화돼
안정적인 수익기반이 뒤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국내증권사들은 외형부풀리기에 나서 지점설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변신노력이 미흡한데다 방향마저도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오는 98년말부터는 외국증권사의 지분참여에 대한 제한이 없어지고
현지법인 설립도 가능하게 된다.

더이상 증시가 국내사들의 안방일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질중심의 경쟁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가 보호막이 돼주던 시절은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지난 7월 발표된 정부의 증시 개편안에는 "투자자보호기금 설립"이란
대목이 들어있었다.

증권사 파산시 투자자 예탁금을 보호하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증권사보호는 커녕 파산까지 고려해야 하는게 정부의 처지다.

개방의 대세는 정부도 막을 수 없는 일이 됐고 그틈에 외국증권사들이
성큼성큼 안방에 들어서고 있다.

< 홍찬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