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

사람들의 소망이 소박하던 시절에는 나라 안팎으로 내우외환의 걱정거리가
없고 "등 따습고 배부른" 것을 상팔자로 여겼다.

사람들의 욕망이 다양화.고급화된 요즈음에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원초적
욕구는 여전히 넉넉한 경제 살림과 튼튼한 국가안보 질서에 있다.

최근 우리사회는 국민생활의 기초수요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어떤 우방보다 "동족"을 우선하고 "가진자에게 고통" 주기를 표방하고
출범한 현정부도 이제야 안보와 경제의 중요성을 재발견한 듯하다.

잠수함을 동원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동족" 상잔의 재발 가능성을
일깨웠고 최근 경제난국이 유한한 경제자원의 제약아래서 영위되어야 할
기초경제원리를 피할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날 한국경제의 성장경로를 간추려 미래의 길잡이를 찾아보기로 하자.

해방이후의 혼란기와 전쟁의 격동기를 거친 다음 자유당 정부시대는 전쟁의
잿더미위에 온국민이 "의.식.주" 기초수요를 채우기에 급급하였다.

미국 원조도입의 시기와 양에 크게 좌우되던 당시의 국민경제 흐름속에서도
57~58년께에는 국민경제생활이 다소 안정을 회복하는 조짐이 잠시 엿보였다.

61년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그것이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정변주체세력의 위압적 자세못지 않게 경제
생활의 기초수요 충족을 급진적 방법에 맡겨 봄직도 하다는 다수 국민의
암묵적 순응 때문이었다.

당시 배고픔 추위 그리고 정치혼란에 시달리던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주체의
정체성을 크게 시비하지 않았다.

박정부의 경제발전전략은 정부가 5년마다 종합적 경제개발 청사진을 제시
하고 기업과 노동자의 경제활력을 동원하는 방식이었고 국내 부존자원의
부족을 감안하여 수출지향으로 정책방위를 잡았다.

정부의 리더십에 순응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금리와 가용성면에서 유리한
자금을 배분하는 정책자금과 조세감면 등의 혜택을 베풀었다.

수출목표달성 등 업적이 우수한 기업인에 대하여 포상을 제도화하는 등
우대하였다.

박정부의 경제발전 전략은 안보상황에 따라 변모하였다.

이는 불행하게도 정치적으로는 "유신체제"라는 민주주의 후퇴와 정국경색
등 부작용을 초래하였고, 경제적으로는 군수산업기반을 다지기 위해 중화학
공업을 추진하여 국민경제를 시장경제궤도에서 더욱 벗어나게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시점에서 되돌아 보면 당시 국내외 여건의 제약하에서
어렵게 창출된 "한강의 기적"에 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로 국제경제 환경과 질서가 자유무역 원칙이 비교적 존중되고 있던
상황에서 수출지향 성장전략이 유효적절했다.

80년대 이후와 크게 다른 이러한 국제경제 환경을 활용할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둘째로, 정부는 인력.정보면에서 민간기업보다 우위에 서 있었다.

60년대 초반 우수한 대졸인력은 정부기관과 금융계를 지망하고, 공개시험도
없이 연줄로 사람쓰는 민간기업은 외면되었다.

중소규모의 기업인은 대부분 근시안적 경영에 급급하고, 대외시장 정보도
어두웠다.

5개년 경제개발계획의 시간지평과 거시경제 안목은 경제관료의 비교우위
였다.

셋째로 경제발전에 대한 묵시적 국민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다.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경제외적 불편을 인내.감수한다는 생각이
팽배하였고, 민간경제주체의 정부신뢰도가 높았다.

넷째로 이같은 광범한 공감대를 토대로 국민총생산을 분배하는 문제,
즉 공평성 문제에 앞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키우는 경제성장문제에 주력할수
있다.

따라서 경제성장의 성과가 충분히 결실될 때를 기다리라는듯 노동법만은
일류선진국의 것 못지 않게 제정해두되, 그 시행을 유보하고 노조활동을
규제할수 있었다.

다섯째로 석유파동 등 파국적 국면마다 중동건설붐과 같은 행운이 찾아와
위기탈출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80년대 들어 정부는 국민경제 운용방식을 정부주도형에서 민간주도형으로
전환하기로 하였다.

그 계기를 흔히 경제규모의 확대와 경제구조의 복잡성에서 찾는 것이
통설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이즈음 정부관료의 비교우위 상실에서 원인을 구할수
있다.

특히 70년대 중반 대기업의 종합상사 등장이래 우수한 인력의 확보가
가능해지고, 세계각지에 산재한 주재원을 통한 정보네트워크를 갖춤에 따라
민간기업의 상대적 우위가 돋보이게 되었다.

전정부의 공적은 단연 거시경제 안정에 있었다.

박정부는 18년간 연평균 9% 내외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등생이었으나,
대략 경제성장률의 2배수준으로 치솟은 물가때문에 경제안정에는 낙제성적을
면하기 어려웠다.

84년에는 정부의 세출예산을 동결하는 등 강도높은 안정화조치 덕분에
전정부는 물가오름세를 낮은 한자릿수로 잡을수 있었다.

통치기간 말기에는 원유가 국제금리 환율 등 이른바 "3저"의 호기를 활용,
경상수지가 획기적으로 흑자로 돌아서는 행운이 있었다.

이러한 호경기 국면에 출발한 노정부는 국민경제생활의 기초수요 가운데
"의.식" 문제는 이미 해결된 사항으로 보고 마지막 남은 "주" 문제해결에
주력하였다.

서울 주변의 분당 일산 등 신도시 건설이 자재난 인력난을 무릅쓰고
강행되었다.

그 결과 요소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따랐으나 주택보급률은 크게
개선되었다.

노정부는 이른바 "6.29 민주화선언" 이후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깨어진 상황에서 집권하였고 집권후에도 터진 봇물같은 국민의 불만욕구에
이끌려 리더십을 상실한채 표류하는 모습이었다.

과거에서 정부의 교훈을 간추리면 국민생산물 분배에 대한 국민합의
재구축, 민간주도형 국민경제 운용방식의 추진지속, 민간기업에 대한 호의적
후원자기능, 노동에 대한 가부장적 보호자기능, 경제원리에 의한 경제운용,
그리고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문민"의 기치를 앞세우고 집권한 김정부는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였으며
과거의 교훈을 외면하는 듯 보였다.

"사정과 개혁"의 회오리 바람속에서 군조직과 정보기관에 서리가 내리고
대북관이 "진보적"으로 바뀌는 가운데 안보의식이 실종되는 듯했다.

"신경제" 정책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대기업 관계가 적대적인양 비추어져
새로운 관계와 자리매김이 정착되기까지 기업 마인드가 위축되었다.

최근의 경제난국을 크게 보면 다음 두가지 측면에서 논의하고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다.

첫째 가계소비수요, 기업투자수요, 정부지출수요를 합친 국내 총수요가
국내 총생산(GDP)을 웃돌아 공급부족분을 국제수지 적자로 충당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뿌리가 있다.

국내부족자원 여건상 불가피한 에너지자원 수출원자재를 비롯 자본재
소비재 등의 수입이 수출을 초과한다.

민주화이후 각 부문에서 분출된 제몫 챙기기 욕구들을 수용하다보니
국내 총수요의 대GDP 초과분이 증대하고 있다.

노동자의 임금인상, 농민의 농산물 가격지지를 비롯하여 교육개혁 등
각종 사회복지 확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국민여론에 촉각을
세우고 득표수를 계산하기 바쁜 정치인들은 경제자원의 제약 조건을 모른다.

정치인은 한편으로 국제수지적자와 외채누적을 우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예컨대 교육부문 관련 지출을 GNP의 5%로 잡아주는 모순에 둔감하다.

이해집단들의 GNP 5% 타령이 줄잇는다.

그러나 5% 짜리가 20개면 GNP 총액이다.

95년 경상GNP 약3백50조원을 기준으로 보면 GNP 5%는 약2백20억달러로
금년도 급증이 우려되는 경상수지 적자폭보다 크다.

국방비와 거의 대등한 지출이 농촌구조 개선 농특세와 관련하여 최근
몇 년간 농촌부문에 살포되고 있으나 그 자금배분의 효율성도 의심스럽다.

우리는 꿀과 우유가 절로 흐르는 땅에 살고 있지 않다.

좁은 국토에 4천5백만 인구가 살고 있으면서 지역이기주의로 국토이용
효율성이 극히 저하되고 있다.

노동자는 임금급상승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은 더디거나 뒷걸음질이다.

기업인은 고도성장기의 방만경영 체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료는 규제완화 구호에도 불구하고 진정 중요한 규제수단을 아직은
포기하기 주저하고 있다.

독일 북유럽 등 서구제국은 사회복지제도의 성장저해 영향 때문에 복지
혜택을 줄이고자 몸살을 치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들의 낡은 복지제도를 이상적 목표로 착각하고 환상을
추구하고 있다.

선진국의 전철을 되풀이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 국내생산물을 구성하는 구체적 상품들이 낮은 질과 높은 가격
때문에 국내의 수요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문제이다.

가격문제는 생산비 임금등 요소가격의 문제이다.

논자들은 경제난국의 원인을 땅값고 금리고 물가고 규제고 등 "고"돌림으로
나열하기를 즐기지만 최근의 문제핵심은 임금고에 있으며, 다른 요인은
부차적이다.

일본 엔화의 절하가 아니더라도 국내요소가격 상승으로 중국 동남아 후발
개도국에 대부분 수출상품의 가격 메리트가 상실되어 국산품이 국내외
시장에서 외면된다.

질의 문제는 기업가정신의 결여, 연구개발 부진에 있다.

국민소득향상과 외국상품 접촉기회 확대로 내국인에게도 국산품은 곧
저질상품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전구를 갈아 끼울 때마다 소켓에 물린 부분에 신경쓰다 보면 국산품이
쓰레기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 공산품의 몇할 정도는 쓰레기가 아닐까.

쉽게 붕괴되는 부실건축물들도 쓰레기더미가 아닐까.

세계화시대 개방경제에서는 오직 세계일류급 상품만이 선호되고 2류급은
배척받게 된다.

이제 OECD 가입이 공식화되었다.

각종 국내 경제제도와 관행이 국제적 기준에 적합하도록 대폭 고쳐져야
한다.

이제 무엇이 국가이익인가를 뜨거운 애국적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적
애국심으로 판단하여야 할때가 왔다.

이점 정부관료를 비롯 모든 경제주체들이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경제난국은 그간 고도성장기에 쌓여온 거품이 부풀어 고질화된데서
비롯되었다.

정부 기업 노동자 가계 모두 각기 제 분수에 넘치게 방만.방자.해이한
경제생활을 해왔다.

정부핵심 등 정치권에서 이제부터라도 국민경제 운용을 경제논리에 맡기고
정치적 편의주의로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섣부른 경기부양책은 문제를 오히려 고질화시킨다.

경제주체마다 진득하게 거품빼기에 노력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다면
앞으로도 5% 내외의 경제성장이 상당기간 지속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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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서울대 상대졸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
<>서강대 교수(경제학과장.경상대학장)
<>금융통화운영 위원
<>한국경제교육학회회장
<>지방세 심의위원(현)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현)
<>서강대 경제대학원장(현)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