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쇼"가 외설이냐 예술이냐 논란이 일더니 최근 어느 국회의원이
국회질의에서 "포르노"전용관을 허용하자고 제언했다 한다.

어느 이벤트회사에서는 "굴업도"에 누드해수욕장 건설을 추진중이라고
하고 어느 도시에선 "섹스타운"을 조성한다고 한다.

이 와중에 헌법재판소가 영화 사전심의는 위헌이란 결정을 내려 이를
두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찬반 양론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한 번 치루고 지나가야 할 산고이긴 하지만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성 문제를 두고 이러한 일들을 과연 우리의 현실과 접목시켜
평행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사회에는 심각하리만큼 청소년 성범죄가 증가 일로에 있고
학원폭력은 그 도를 넘어섰다.

학원폭력에 시달리다 못한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가 하면 심지어
자살을 했다는 보도도 있다.

더구나 같은 급우들로부터 오랫동안 폭력에 시달려온 어느 학생의
부모가 고심끝에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 서글픈 현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영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요즘 각 영화사들은 독립투사가
해방을 맞은 듯 너도나도 음란 영화원본을 그대로 방영하겠다고 나섰다
한다.

우리 헌법에는 표현의 자유 알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고 해서 남에게 불쾌하게 또는 불이익이 될수
있는 표현을 함부로 하거나 남의 사생활까지 미주알 고주알 알아야
하는 법 취지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렇치 않아도 우리 주변엔 성적 자극물이 지천에 널려 있질 않은가.

섹스는 정신적 결합에서만이 얻어내는 것이며 그래서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더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무조건적인 "드러내기"보다 "감춤의 미학"에서 진정한 감동이 우러나온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영화의 사전심의 그 자체가 위헌이라
했지 도덕성이 결여된 음란물이나 폭력성 영화는 상영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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