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이 설안이 보옥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다가와 엿들었다.

설안이 보옥에게 대옥이 지금 아프다는 등, 신부 될 사람이 사실은
보채라는 등, 그런 따위의 이야기를 흘리면 보옥이 갑자기 발광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설안이 눈치가 있는지 될 수 있는대로 보옥을 안심시키는
방향으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형수님, 오늘밤 혼례식이 약식으로 치러진다는 것은 어머님이 말씀해
주셔서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 간략하게 치러지는 거 아닌가요?"

예기 혼의편에 보면, 신랑이 수레를 몰고 신부집으로 가서 신부를
수레에 태워 고삐를 잡도록 하고 신부집을 세 바퀴 돌아야 한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 다음 신부도 스스로 수레를 몰아 또 세 바퀴 돌고. 형수님은 왜
신랑과 신부가 그렇게 세 바퀴를 도는지 알아요?"

"옛날부터 그렇게 해온 풍습이라 왜 그러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히히. 형수도 다 알고 있으면서"

"정말 몰라요. 도련님이 설명을 해봐요"

그러자 보옥이 왼손으로는 검지와 중지를 세우고 오른손으로는 검지
하나를 세웠다.

"하나는 양을 의미하고 둘은 음을 의미하잖아요.

혼인이란 양과 음이 합해지는 거고 하나와 둘이 합해지는 거죠.
이렇게 히히"

보옥이 오른손의 검지를 왼손의 검지와 중지사이로 쑥 집어넣었다.

그것은 남자의 그것이 여자의 옥문으로 들어가는 형용인 셈이었다.

희봉이 얼굴이 벌개져서 물러가려고 하였다.

"나도 그렇게 수레를 타고 가서 세 바퀴 돌고 대옥이를 태워 오고
싶은데"

"아유, 도련님도 몸도 성치 않은데 수레를 몰다가 무슨 변을 당하게요.

그리고 다른 가문의 집안이면 몰라도 같은 가문의 친척끼리 혼인하는
건데 수레까지 몰고 갈 필요 없지요"

희봉이 황급히 얼버무리고 왕부인에게로 가서 오늘밤 보채가 가마를
타고 올 때 풍악을 올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의논하였다.

보옥이 너무 약식으로 혼인을 치른다고 투정을 하기도 해서 희봉은
비록 귀비 원춘의 상중이긴 하지만 풍악을 울리자고 왕부인을 설득하였다.

"풍악을 야단스럽게 울리지 않고 잔잔하게 울리면 무방하겠지"

왕부인도 결국 허락을 해주었다.

보옥의 아버지도 부임지로 떠나고 없고 하객들도 없는 혼례식에
풍악마저 없으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싶었다.

"거창하게 악사들을 부르지 않고 극단에서 악기를 다루던 아이들을
불러 풍악을 울리도록 할게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