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유럽연합(EC)이 한편이 되고, 인도네시아와 우리나라가
다른 한편이 되어 맞붙는 전쟁은 상상하기조차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WTO(세계무역기구)체제하의 무한 국제상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니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져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과 EU가 기아자동차의 인도네시아 국민차사업을 대표적인 불공정
행위라며 지난 3일과 4일 잇따라 WTO에 제소한데 이어 미국도 금주내로
제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미국은 한술 더 떠 내국법인 통상법 301조를 걸어 인도네시아에 대해
쌍무차원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번 분쟁은 쉽게 끝날 일이
아닌성 싶다.

이에 맞서 우리정부도 분쟁당사국간 WTO협의에 제3자로 참여해
인도네시아를 측면지원키로 하고 금주중 WTO에 제3자 참여를 요청할
것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 국민차 프로젝트란 인도네시아 정부가 기아자동차의
세피아를 국민차로 선정, 앞으로 3년간 기아의 기술지원 아래 국산화율
60%를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세피아에 대해 수입관세와 사치세를
면제해준다는 내용이다.

기아가 쟁쟁한 선진국 자동차업체들을 따돌리고 국민차사업권을
독점했다는 것은 중화학공업제품의 수출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볼 때 일대 쾌거가 아닐수 없다.

이는 21세기 세계자동차수요의 3분의1을 소화할 거대한 동남아시장
진출을 위해 탄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중요한 의미도 갖는다.

물론 경쟁사들의 방해공작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저들의
반발이 구체적 행동으로 옮겨진 이상 우리로서는 정부와 업계가 똘똘 뭉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선진국들의 훼방을 저지하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

인도네시아는 WTO체제하에서 "최빈개도국"대우를 받고 있어 보조금
부문에서 2000년까지 유예적용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세피아에 대한 세제혜택을 협정위반으로 볼수는 없다.

앞으로 설령 선진국의 경제보복이 있다 해도 인도네시아의 확고한
입장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일을 계기로 선진 자동차업체들의 해외전략에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난 20년간 인도네시아 자동차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해온
일본업체들은 어째서 인도네시아가 국민차사업을 한국업체에 맡기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곱씹어볼 일이다.

일본 업체들이 단물만 빼먹고 기술이전을 기피해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망쳐놨다는 인도네시아 투자부장관의 항변은 오늘날 일본 자동차업계가
진출하고 있는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공통된 탄식이다.

자동차 선진국들은 인도네시아의 국민차사업에 대한 부당한 압력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 EC는 아무런 실리도 없이 일본의 전략에 부화뇌동하는것
보다 3년후를 겨냥해 인도네시아의 숙원사업인 국민차사업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