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관에서 설안이 건너오자 희봉이 그녀를 뒤뜰로 데리고 가서 당부를
하였다.

"네가 왜 여기로 왔는지 알어?"

"그야 혼례식 준비를 도우려 왔죠"

설안도 자견이 못지않게 마음이 상해 있었으므로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넌 말이야. 혼례식 준비를 돕지 않아도 돼"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안의 두 눈이 커졌다.

"넌 보옥 도련님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온거야.

너도 눈치를 챘겠지만 오늘밤 보옥 도련님이 보채 아가씨랑 혼례식을
치르지 않느냐.

그런데 보옥 도련님은 대옥 아가씨와 혼인을 하는 줄 알고 있단 말이야.

그렇게 말을 해놓아야 보옥 도련님 정신이 좋아져서 혼례식을 치르는
일이 성사될 수 있거든.

보옥 도련님이 지금 대옥 아가씨를 기다리면서 대옥 아가씨 시녀들은
왜 안 보이느냐고 그런단 말이야.

그러니 네가 보옥 도련님 눈에 띄면 보옥 도련님이 안심을 하고
혼례식을 기다릴 거란 말이야.

너는 아무 일도 안 해도 좋으니 그저 보옥 도련님이 있는 신방
앞 마당만 왔다갔다 하란 말이야"

설안이 듣고 보니 별 희한한 역할도 다 있다 싶었다.

지금 와서 그런 일 하기 싫다고 다시 소상관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그러겠다고 대답하였다.

설안이 뒤뜰에서 돌아나와 신방 앞으로 가보았다.

보옥이 문을 반쯤 열어놓고 혼례식 준비로 부산한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벌써부터 신방에 들어가 있는 신랑도 다 있나 싶어 설안이 피식 웃음이
나오려고 하였다.

신방은 혼례식을 다 치른 후에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 들어가는 방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신방에 앉아 있는 보옥이 바보스럽게 여겨지기도 하고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아무튼 설안이 일을 하는 척하며 신방 앞을 왔다갔다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보옥이 반가운 목소리로 설안을 불렀다.

"설안아, 너도 왔구나. 대옥이는 지금 뭐 하고 있니?"

"대옥 아가씨는 지금 신부 단장을 하고 있어요.

신부 단장을 하니 대옥 아가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볼 정도예요.

혼례식 때 보옥 도련님이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렇게 대답하는 설안의 가슴으로는 쓰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 대옥 아가씨는 신부 단장은 커녕 수의 단장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오, 그래? 나도 빨리 보고 싶구나. 왜 저리 해님은 느림보 걸음을
걷는 것일까"

보옥이 중천에 떠 있는 해를 올려다보며 히죽히죽 웃음을 흘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