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을 아십니까"

한.영 국제회의 통역사 3년차인 정연일씨(33.외대통역대학원 사무국장)는
존재가 가벼울수록 행복하다.

아예 사람들이 자신을 인식조차 못하기를 바란다.

물론 통역을 할 때에 한해서다.

"''진짜 통역사는 투명인간''이란 말이 있습니다.

청중이 통역사가 통역중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고
완벽한 통역을 하는 것이 모든 통역사들의 최대 목표이지요.

통역사의 존재가 가볍다는 것은 그만큼 완벽한 통역을 해낸다는
말입니다"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후 1년간 리서치 회사에서
일했다.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을 알게 된 것도 이때의 일.

"''국제화''라는 거센 흐름이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는 강렬한 예감과 함께
동시통역사가 미래에 걸맞은 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고소득 프리랜서''라는 점도 매력적이었지요"

하지만 ''프리랜서''라는 이름대로 통역사들이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규칙한 회의 일정에 맞춰 자신의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각''을 잃지 않기위해서는 쉴틈없이 자기를 닥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새로운 상황에서 일을 해야 하는 만큼 타성에 젖을래야
젖을 수 없고 늘 새로운 도전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더없는 매력이다.

"첨단의 고급정보가 쏟아지는 일선을 누빌수 있다는 것, 국제화를
이끌어가는 전문인이라는 자부심이 가장 큰 보람이겠지요"

그는 동시통역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항상 "강심장"이
준비됐는지를 먼저 묻는다고 한다.

"언제나 ''생방송''인 동시통역사에겐 늘 뜻밖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전에 배포한 자료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연사들의 막판 뒤집기는
다반사지요.

어떤 사태가 벌어지든간에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심장이 꼭 필요하더라구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