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견은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돌려 소상관을 향해 냅다 달려갔다.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옥 아가씨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그래서 대옥 아가씨와 더불어 원귀가 되어 보옥 도련님과 보채 아가씨의
신혼생활을 훼방놓을 거야.

누구 하나가 급사하도록 하고 아기도 가지지 못하게 할 거야.

자견의 마음속에서 저주에 가까운 이런 독한 사념들이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소상관에 이르니 견습시녀 둘이 대문께에서 밖을 내다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견이 돌아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허둥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견은 대옥의 병세가 더 심해진 것을
알아차리고 급히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니나다를까 대옥은 온몸이 신열에 떠 불덩이 같이 펄펄 끓고
있었다.

양볼은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열꽃이 피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대옥은 가마솥에 삶기기라도 하는 양 가쁘게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이리 꿈틀 저리 꿈틀 하였다.

"이 일을 어쩐담. 설안아, 대옥 아가씨 유모 왕씨를 빨리 불러 오너라"

자건의 생각으로는 이런 때는 보옥의 혼례에 마음이 빼앗겨 있는 집안
어른들보다 대옥의 유모 왕씨가 더욱 대옥을 잘 돌보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왕씨는 달려오더니 그저 구들 위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기만
할 뿐이었다.

자견은 집안의 부인들 중에서 보옥의 혼인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는가 하고 더 듣어보았다.

그러자 도향촌에 기거하고 있는 이환 생각이 났다.

이환은 보옥의 형수이긴 하지만 과부가 된 몸이라 시동생의 혼례식에
참석할 수 없는 처지였다.

과부가 혼례식에 참석하면 신부가 또 과부가 되기 쉽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자견은 견습시녀를 시켜 이환을 불러 오게 하였다.

이환은 아들 가란이 지은 시를 고쳐주고 있다가 대옥의 병이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왔다.

이환의 시녀 소운과 벽월도 이환을 따라 왔다.

이환이 소상관 대문 앞에 이르니 소상관이 괴이한 적막에 젖어 있었다.

이환의 머리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벌써 대옥이 숨을 거두고 곡까지 끝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수의나 관은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가.

이환이 허겁지겁 방으로 뛰어들었다.

대옥의 침상 곁에서 울다 지친 왕씨와 시녀들이 손등으로 연방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정말 대옥이 죽었는가 하고 침상을 바라보니 아직 대옥의 숨은 붙어
있는지 가슴께가 가쁘게 부풀어 올랐다다 꺼졌다 하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