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칠성산 쪽으로 간다.

이 글이 나의 생애에 마지막 글이 될 수 있다.

부모 형제가 그립고 친구가 그립다.

나는 지금 적과 대면한다.

주여, 나를 지켜 주소서"

절막하면서도 호소력이 담긴 이 글은 어느 종군 기자가 현장에서 다급하게
쓴 기사도 아니요, 전쟁소설도 아니다.

지금도 교전중인 강릉해안 무장공비 침투작전에 참가했다가 장열하게
산화한 어느 병사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진중일기이다.

수첩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숨지기 하루 전에 썼다는 일기의 주인공
강정영병장은 적과 대치하고 있는 실제 상황을 짧으나마 절박했던 당시
심중을 적나라하게 적어 두어던 것이다.

젊음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숨져간 이 병사는 이미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생애 마지막 글"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어 이 일기를 접한 나는
며칠동안 심한 몸살을 앓았었다.

지금도 나의 뇌리한구석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나는 평안남도 평양시 선교리에서 태어났다.

내 나이 다섯 살 되던 어느 해 겨울이었다.

우리 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무장한 인민국 3명이 할아버지를 마당
한가운데로 끌어내리더니 무참하게 총살시켰다.

성인이 된 후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그들은 나의 아버지가 남한에
가있다는 이유만으로 반동분자라는 낙인을 찍어 할아버지에게 그같은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잔혹한 만행을 어린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공산주의 신봉자들이며 전쟁과 살인을
일삼는 전쟁 광신도들이다.

이번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는 침투 목적이 또 다시 전면 남침을
하기 위한 사전 계획된 침투라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런데도 최근 어느 대학생이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남한정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학보사에 게재한 일, PC통신을 통해 같은 내용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연세대 총장을 처형하겠다는 협박편지를 쓰는 등 좌경에 물든
이들에게 이 병사의 죽음마저도 정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지
감히 되묻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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