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 잠수함 침투사건은 이를 기회로 북한의 정체를 알고 대비하면
전화위복이 되지만 잠시 지나서 유야무야하면 천추에 한을 심을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단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생포 이광수의 진술을 토대로 한 국방부 분석만으로도 북의 대남
잠수함 작전은 여간 치밀해, 여기에 휴전선 땅굴을 연결시키면 한시도
마음 놓기 힘들다.

70년대 부터였다는 점에선 새삼스러울것 없다고 현혹되기 쉬우나
단계적으로 장비 인원 전술을 보강, 목표를 격상시켜 왔을 가능성에
더 의미가 실린다.

10여일 토벌과정에서 점점 명백해지듯 이번 침투의 진성 임무를
일상 정보수집 차원으로 보는 것은 한마디로 비상식이다.

뭣보다 적후방 침투가 은밀을 생명으로 한다는 점 하나로도 30명 가까운
인원을 대-상좌 포함 전원 장교로 편성, 잠수함으로 투입한 작전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핵관련 대미협상 이후 신포의 원전건설이 진전되고 나-선 지역에
대한 투자유치가 고비를 바라보고 있으며, 식량원조 호소가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을 택해 불장난을 하는 이유를 어림하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잠수함의 좌초가 불의였다는 점에선 작전의 실패요, 불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실패해 의도가 노출될 경우 치를 대가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숙고하지 않은채 저질렀다면 북한 지도부의 경솔성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하지만 반대로 상당한 실패 가능성을 예상한 미필적 고의로 결행한
것이라면 필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만한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밖엔 볼수
없다.

잠수함 침투의 숨은 목적은 과연 뭔가.

가장 높은 가능성은 설령 전면전까진 아닐지라도 단기 제한전쟁 감행을
위한 적정탐지 임무다.

요직 고위급 장교를 파견한 것은 직간접으로 수집-평가된 첩보를
책임장교로 하여금 현장확인 함으로써 대남 공격작전 원안을 완성하기
전단계의 의미부여라 할수 있다.

저들이 장기전에 승산이 없음을 자인하는 대신 5~7일 단기 기습전으로
최소한 휴전협상에 이용할 점령지역 확보는 가능하다는 타산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다만 그 적정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수 있다.

가장 단기로는 곧 강릉에서 개최될 전국체전이 D데이였으리라는 추측이
항간에 나돌 정도다.

그러나 적어도 분명한 것은 저들이 개방과 대화가 불가피할수록 단기전
준비를 완비해 놓았다가 남측의 흡수통일 외도가 보일 경우 즉각 선제공격
한다는 결의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체제우위 역전이 불능한 상황에서 한국 제외 개방과 성장이
끝내 남측 방해로 유산될 경우에 대한 대비이며 이는 바로 김정일일당의
최후지책인 것이다.

북측이 복수안을 가진 상황에서 남측이 취할 대안은 뭔가.

한마디로 정상계획 외에 비상계획(contingency)의 상비이다.

현실적으로 매년의 국가예산과 기구운영에서 정상안 외에 비상안을
늘 가지고 있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가차없이 시행에 들어가는 대비를
말한다.

정치권의 선견지명과 정부의 책임있는 대처로 이 난국을 타개하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일자).